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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2015년을 보내며 본문
2015년을 보내며
2015년을 몇시간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에는 별 감흥이 없다. 섭섭한 것도 새해에 대한 기대도 별 것이 없다.
아쉬운 것은 한국 정치가 너무 실망스럽다는 것과 윈도우즈가 여전히 죽지 않고 기를 쓰고 있어 내가 블로깅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
요즘 팔 저림이 심해서 타자입력이 어렵기 때문에 음성입력을 고려 중인데 윈도우즈에서는 한글 음성 입력은 요원하고 애플 제품에서는 티스토리가 지원되지 않는다.
1970년 내가 귀국하던 해 한국은 여전히 뒤떨어진 나라였고 구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마지막 치를 대통령 선거를 위해 준비하던 해였다. 내가 부임한 서울대 문리대(동숭동)는 데모의 원천지로 한 외국인이 한국의 버클리라고 불렀다.
대학은 황폐했고 나는 갑자기 무인 고도에 내어 던져진 사람같이 느꼈다. 물리학과엔 일정때 일본에서 제국대학을 나온 내 학부과정 때 우리를 가르쳤던 선배 교수 2분 그 다음 세대의 두 선배교수가 있었지만 한 분은 교무처장으로 본부에 나가 있어 물리학과를 비웠었고 또 한 분도 전공분야도 다르지만 연구생활하고는거리가 먼 분들이었다. 1년 선배 한 분이 있었지만 교수에는 맞지 않는 체질의 사람이었다.
그러니 거기에서 물리를 한다는 것은 무인고도에서 살아 남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 때 내가 차지한 교수자리를 비워주시고 서강대학으로 전직하신 내 학문의 은인 진정한 내 멘토였던 고 C 교수가 제안해서 서울에 있는 통계물리분야의 사람들 다섯이 수요일에 서강대학에 모여 통계물리 수요 세미나를 열기로 했다.
서강대학의 은사께서 수요일에 모일 때 서강대에서 한 과목 가르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아 들어 처음이자 끝으로 외부 출강을 한 일이 있다. 그 때 서강대학엔 지금 청와대의 주인이 학생신분으로 재학하고 있었다.
내가 가르친 과묵은 Berkeley Physics Vol 3로 물리학과와 전자공학과 3학년 학생이 듣는 과목이었다. 박근혜학생은 이 과목을 듣지 않았지만 서강대학에 갈 때 학교에 검은 정장들이 여기 저기 눈에 띄일때는 박근혜학생이 등교한 날이었다. 그래서 그 학생이 학교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그 학생의 이름까지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청와대의 규수학생이란 것은 그 때 안 셈이다.
1980년대 내가 전산물리에 흥미가 있어 몬테칼로 기법으로 고비현상을 연구할 목적으로 컴퓨터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미국 물리학회가 발행하는 "Physics Today" 라는 잡지에 기계어를 써서 3D Ising Model의 Crtical Phenomena를 PC 로 연구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것이 자극을 받아 기계어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그 당시 "마이크로 소프트웨어" 라는 잡지에 PC의 Dos 의 내막을 풀어 해설하는 기사를 연속해서 써 대는 한 젊은이가 있었다. 어디서인가 그 젊은이가 서울대학의 의과대학에 재학중인 학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의 이름은 안철수였다. 난 안철수씨를 한 번도 직접 만난 일은 없어도 그 이름은 그가 대학생 시절부터 안 셈이다.
요즘 TV를 보고 있노라면 노동법을 개정하지 않는다고 국회를 욱박지르는 광고를 마추치게 된다.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국회를 욱박지르는 광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난 노사합의를 했다는 노동법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른다. 진보 세력은 개악이라 하고 보수세력은 필요한 법이라고 한다. 노동시장이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어쩔 수 없는 추세다. 그럼에도 많은 세력이 반대하고 있고 그래서 국회는 선뜻 노동법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만큼 재벌들의 구조도 개조해야 한다. 그런데 한 편은 고치고 딴 한편은 전혀 고칠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불신이 생기는 것이다.
지금 대통령은 그런 재벌들로 부터 정치자금을 차떼기 형식으로 받은 한나랑당의 당수였다. 그러니 불신이 생기고 청와대가 원하는 대로 국회가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를 반성하지 않고 남만 탓하고 욱박지르기만 하니 무엇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능한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차떼기 정당 한나라당의 당수였다.
오늘날 필요한 노동법을 만들지 못하는 그 근원은 그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과연 노사정 합의라는 것이 노동계만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최근 김부겸이라는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 안철수에에게 7,80년대 안철수가 치열하게 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그 말의 이면에는 운동권이 치열하게 운동을 하는데 그 뒤에서 편안하게 컴퓨터 백신이나 개발해서 인기를 얻었다는 사고방식이다.
80년대 안철수씨는 Dos의 내막을 파 해치는 기사의 열성적인 기고자였다.
Dos를 알았기 때문에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 수 있었다.
난 이 사람이 오늘의 대한민국에 운동권의 100배는 큰 기여를 한 사람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과거의 기여를 했다고 운동권이나 백신 연구자가
그 공적으로 무얼 할 자격이 있다고 내 세워서는 안된다.
나는 70년대에서 민주화가 정착되던 2000년까지 운동권의 한가운데에서 살았다. 계엄군이 동숭동 문리대 정문을 탱크를 드리대고 문을 닫을 때도 있었다. 나는 그 때 휴교로 수업을 못한 부분을 보강을 한다고 구정에도 강의를 했다. 박정희시절 구정은 폐지되었고 공휴일도 아니었지만 대개 겨울방학 기간이라 쉴 때였다. 거기에다 그래도 설날인데 학생들을 등교시켜 부족한 수업을 보충했다.
내 선배교수는 내가 얼마나 철두 철미 원칙주의자였나를 강조하기 위해 구정에 강의를 한 사람이고 여러사람들에게 자주 말했다.
그렇게 해서 내가 30여년간 가르친 학생들이 오늘의 한국 과학기술의 중요한 역군이 되었던 것이다.
내가 언젠가 블로그에 쓴 일이 있다. 유신 정권때 미국에서 1년 동안 연구교수를 지낼 때 한 교포 지인이 나를 격렬하게 바난한 일이 있었다. 내가 치열한 반유신 교수가 되어 시국선언이라도 하고 중정에 잡혀가기도 하고 퇴직도 당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 때 내 대답도 그 글에 썼다. ( <대한 민국호>에서 살아 남기 )
김부겸이란 정치인도 내가 재직할 때 서울대 학생이었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12년이 걸렸으면 치열한 운동권 학생이었을 것이다.
나는 운동권이 운동을 한 것이 우리나라 민주화에 그렇게 크게 기여했다고 보지 않는다. 운동은 운동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정도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때 이 운동권출신이 한 정치세력이 되어 오늘날 차떼기당이나 별 다를 바 없는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 거기다 무능하기까지 한 정치세력이 된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은 선거에 이겼어야 했다. 아무리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했어도 시대적 여건으로는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그런데 무기력하게 주저 앉아 버렸다. 카리스마도 지도력도 선거전략도 없이 그냥 무너진 것이다. 미국에서 대선에서 진 후보가 또 다시 대선 후보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적어도 한 term은 져야 한다. 그런데 그런 무능한 문재인 또 야당 대선후보로 나오려고 한다. 그 때 그나마 그 정도의 표를 얻은 것은 안철수씨의 양보 덕이었다. 무능한데에다 염치도 없는 사람이다.
안철수씨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또 다시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실망시킬 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회는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오늘의 정치를 보면 우울할 뿐이다. 새해에는 좀 더 밝은 소식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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