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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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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단상/잡문

2004 년에 쓴 글

샛솔 2016. 6. 25. 13:48

서울대 명예교수 샛솔 이구철

A. 가르친다는 것
내가 평생을 배우면서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살았지만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항상 느끼고 있다. 1970년에 부임해서 2001년에 은퇴할 때까지 30 년을 넘게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나는 나대로 열심히 강의하였다. 그렇지만 받아들이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어땠을까? 70년대에는 서울대 물리학과는 한국의 수재들여 다 모일 때였다. 그때 나는 이젠 마로니에 공원으로 변해 버린 동숭동 캠퍼스에서 일반물리학을 강의했었다. 그때 사용했던 교과서가 수준 높기로 이름 난 "버클리 일반 물리학"이란 책이었다. 그 내용이 너무 과격하리만치 혁신적이어서 미국대학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미국에서도 오직 일류대학의 심화 과정(honor class) 의 소수의 아주 우수한 학생에게만 가르치는 거의 대학원 수준에 육박하는 그런 교과서였다.

그 때 내게서 강의를 듣던 학생들이 졸업하고 미국에 가서 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나와 함께 학생을 가르치는 동료교수가 되었다. 언젠가 교과과정 문제를 논의하던 회의가 끝난 후 사석에서 그 때 내게서 배웠던 제자 동료교수가 그 교과서에 대해 비평하면서 교과서가 너무 어려워 내 강의가 무슨 말인지 몰랐었다고 실토하였다. 그 교수는 내 반에서 1~2 등을 다투던 우수한 학생이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은 내가 아무리 어려운 문제를 출제해도 만점에 가까운 답안지를 내던 그런 학생이었다. 이 학생이 이랬다면 나머지 학생들은 어땠을까? 나는 그 교수의 말에 깊은 충격을 받았던 생각이 난다.

버클리 물리의 백미는 제 2권인 전자기학이다. 하바드 대의 퍼셀이라는 교수가 쓴 이 책은 막스웰의 전자기학을 그 책에서와 같은 관점으로 쓴 것은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생각된다. 아인쉬타인의 특수 상대성이론을 써서 움직이는 전하가 만드는 전기마당이 바로 자기마당이라는 것을 보였다. 전자기학은 그 자체가 특수 상대성이론의 구조를 갖고 있음을 보였던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물리학과 2학년 학생들에게 강의했던 것이다. 나도 이 새로운 관점은 처음 대하는 것이었고 참으로 "멋" 있는 접근법이라 생각했었다. 나는 이 교과서에 매료되었고 신 바람이 나서 강의하였던 것이다. 어쩌면 치기 어린 젊은 교수의 "멋내기"요 "뽐내기"였던 것 같다. 전국의 수재들을 칠판 앞에 모아 놓고 스스로 도취되어 옷소매에 백묵가루 범벅을 한 채 입에서 침을 튀기면서 "폼" 한번 잡아 봤는지 모른다.

 



어떤 교육개혁을 주장하는 교수는 이런 말을 하였다. 교사가 범하는 가장 큰 오류는 "학생도 자기와 같이 생각하고 자기의 설명을 받아들일 것"이라 가정하는 것이다. 내가 바로 이 오류를 범했던 것이다. 내가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쳤고 박사 후 과정까지 거쳤는데 내가 버클리 물리학을 이해하는 차원을 이제 막 대학에 들어와 물리를 처음 배우는 학생에게 이해하기를 기대했던 것은 터무니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왜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을까?

B. 수학과 물리는 왜 배워야 하나?
수학과 물리는 왜 배워야 하나?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경영전략가 톰 피터스는 미래(10 내지 15년안의)의 가장 경쟁력 있는 직종10 을 꼽고 사라질 직업 10을 꼽았다. 가장 경쟁력 있는 직업 10은 지금은 그 이름도 생소한

Tissue Engineer, (근육조직 기술자, 로보트 만드는데 필요한가?)
Gene Programmers, (유전자 조작 지술자)
Pharmers, (유전조작 관련 의약업자)
Frankenfood Monitors, (유전자변형식품 비평가)
Data Miners, (많은 데이터 중 적합한 데이터를 찾는 직업)
Hot-line Handymen, (생체세포 긴급호출업자?)
Virtual-reality Actors,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배우)
Narrowcasters, (지역유선방송업자)
Turing Testers, (컴퓨터 인공지능 관련 업자)
Knowledge Engineers (지식 기술자)

* () 내는 모모 가 번역한 것이므로...맞지 않을 수도 있음)

따위이다. 하나같이 쉬운 직종이 아니다. 한마디로 쉽게 익힐 수 있는 직종은 사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단순 노동의 직업은 사라진다. 70년대 영국 부두노동자 108명이 5일 걸려 하던 목재 하역작업을 컨테이너가 도입되면서 8명이 1일에 해 치울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8/540 의 man-days 의 감축효과다. 우리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변화는 이루어 지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가속도가 붙었다. 라디오가 처음 도입된 이후 5천만명시대에 도달하는데 37년이 걸렸으나 웹이 도입된 후 5천만 사용자에 도달하는데 단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불루 칼라 노동의 혁명은 100년 걸렸지만 화이트 칼라 혁명은 10 년안에 이루어 질 것이라 예언하고 있다.

21세기를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업그래이드 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젊어서 한번 배운 기술로 평생을 밥벌이하고 살 수 있던 시대는 지나 갔다고 한다. 지식 기술의 발전과 변화는 눈이 팽팽 돌 지경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새로운 직업 또 업그래이드 해야 직업은 모두 이러한 지식 기술 산업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지식 기술은 모두 수학과 물리에 그 뿌리를 갖고 있다.

참고로 앞으로 사라지거나 그 형체가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할 직업 10로는

Stockbrokers, Auto Dealers, Mail Carriers, Insurance and Real Estate Agents,
Teachers,
Printers,
Stenographers,
CEO,
Orthodontists,
Prison Guards,
Truckers,
Housekeepers,
Fathers

등을 꼽았다. 여기에 교사가 있다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나는 앞으로 교사는 가르칠 내용을 배워야 할 뿐 아니라 새로운 지식기술에 바탕을 둔 교육매체를 제작하고 개발하는 일도 배워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옛날 자기가 배웠던 내용을 자기가 배웠던 방법으로 그대로 답습하며 가르치는 교사로서는 생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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