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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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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의 도시 난징" 과 "오래된 미래 도시 베이징"

샛솔 2020. 11. 18. 15:42

내 블로그의 독자이시기도 한 신경림 작가님의 최근 발간한 도서 두 권을 보내 주셨다.   내가 전자책으로 읽는다는 것을 기억 두셔서 원고로 넘겼던 디지털 파일을 보내 주셔서 종이책이 아니라 pdf 로 읽을 수 있어서 완독할 수 있었다.  

 

 

중국의 대표적인 두 도시에 관한 책 두 권

 

두 책 모두 도시의 고대사와 근대사에서 현대사까지 많은 연구 끝에 완성된 책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저자는 베이지에서도 살았고 현재 난징에 거주하고 있다.   

 

"지성인의 도시 아카이브"라는 시리즈 이름과 같이 이 책들은 도시 이야기를 조금 고급스럽게 소개하고 있다.  찾아보기가 있는 책이다.     "찾아보기"는 일반적으로 학술서에 있는 책의 끝자락 부록이다.   

 

요즘 나는 대부분 전차책으로 읽기 때문에  나에겐 찾아보기의 중요성이 사라지고 있다.   옛날엔 학술서나 기술서를 살 때 찾아보기가 얼마나 충실한지를 확인하고 책을 골랐다.   먼저 읽은 부분에서 뭔가 다시 읽고 싶을 땐 "찾아보기"를 펼친다.    요즘은 ebook reader의 찾아보기를 이용하거나 OCR 이 되는 pdf 도 acrobat 리더기의 "찾아보기"를 쓴다.

 

도시사를 보면 풍운을 겪지 않은 도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난히 난징은 풍운을 겪은 도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중국의 지리에 익숙하지 못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구글 지도를 열어 도시의 위치를 확인했다.   중국의 지리에 대해서 익숙하지 못한 것은 내 잘못만은 아니다.    내가 교육받을 때만 해도 중국의 지명이나 인명을 우리식 한자어 발음으로 읽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본어는 내 제1언어이기 때문에 일본식 이름으로 읽었지만 대부분의 내 나잇도래의 사람은 "이토 히로부미"보단 "이등박문"이 더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중국 이름도 마찬가지다.   난 아직도 "주은래"의 중국 이름이 뭔지 모른다.  "모택동"도 그렇다.  "마오"까지는 나오지만 "택동"이가 뭐더라?라고 한다.  얼마 전까지도 베이징을 그냥 북경이라 불렀었다.

 

더욱이 간자체가 생기고 난 이후 중국 문자에 대한 인지력은 더 떨어졌다.   대만 타이페이에서 두 해 한 달 겨우살이 하러 갈 때 좀 도움이 되려나 하고 중국말을 배우려 한 일이 있다.   그래도 다행했던 것은 타이완은 아직도 번자체를 쓰기 때문에 거기의 문자는 쉽게 인식할 수 있었다.

 

위의 두 책 모두 도시사라고 할 수 있다.  고대에서 근대 현대까지를 다루고 있다.    사실 중국은 한국과는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역사적으로 가깝다.    그러나 항상 갈등과 긴장관계에 있었고 지금도 예외는 아니다.   

 

나도 언젠가는 한 번 관광삼아 가 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사드"사태 이후 나빠진 한중관계로 중국행은 후 순위로 밀려났다.    더욱이 요즘은 코로나로 교통이 거의 끊기다시피 되어 한 동안은 중국 여행은 갈 것 같자 않다.

 

베이징은 나만 두 번 간 일이 있다.   한 번은 한중 수교전에 연변 물리학 대회가 있어 베이징을 거쳐 갔었다. (사진, 기억, 역사 - 1990 연변 물리학 대회)    두 번 째는 여행은 한중 수교 이후일 것이다.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중국 과학원의 꽤 알려진 H교수가 포항대의 K 교수와 나를 중국과학원에 초대해 주어서 갔었다.       그때 여행길에서 베이징 대 교수(조선족)를 만나 베이징대도 구경하고 그 댁에 초대받아 석찬까지 대접받았다.   

 

내가 은퇴한 2000 년 보다 몇년 전일 것이다.   그러니까 90년대 후반부일 것이다.  그래서 그때만 해도 베이징이 오늘만큼 발전한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두 방문 기억이 오버랩되어 어떤 기억들이 두 번째인지 첫 번째인지 알 수 없다.   첫 번째 여행 때에는 사진을 많이 찍어 두었기 때문에 아직도 조금 남아 있지만 두 번째는 남아 있는 것은 그때 쓰다 남은 인민폐와 동전 조금이다.     두 번 째는 중국 과학원 초청이라 경비를 그쪽에서 부담했기 때문에 나중에 그쪽에서 준 돈 남은 것뿐이다.   

 

두 번째 여행이었던 같은데 출퇴근 시간의 베이징 대로의 어마어마한 자전거 행렬이 인상적이었다.     

 

난징은 중일 전쟁중에 참화를 겪은 도시다.    "난징 대학살"은 아직도 일본과 중국이 역사논쟁을 벌이고 있는 사건이다.   이런 사건들은 내가 태어나고 "지나사변"이 일어난 다음의 역사들이다.    

 

또 난징은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하던 한국 사람들이 많이 활약하던 곳이라 그 시절의 이야기와 유적들이 책에 나와 있다.   베이징이나 난징을 여행할 생각이 있다면 한 번 읽고 가면 찾아가 볼 곳들을 많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찍어 두었던 90년대의 베이징 사진 몇장을 올린다.

 

만리장성일 것이다. 지금은 어마어마한 인파로 몸살을 앓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그 땐 참 한가했다.

 

관광가이드가 데려간 기프트 숍에서 주자의 "권학가" 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池塘春草未猶夢 階前梧葉已秋聲  를 꽤 멋 있게 쓴 족자 하나를 샀는데 양실에 족자 걸 만 한 곳이 없어 내 침실에 걸어 두었었는데 두 번 리모델링하는 과정이서 사라졌다.   추억거리인데 아쉽다. 

 

90년대 베이징

 

90년대 베이징 공항

 

연변학회를 주관했던 내 동기 고인이 된 강경식교수와 함께 

 

자금성도 구경했던 생각이 나는데 여기가 거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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