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 2021/04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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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의 "일본 장학생 관료들"

 

미국이 일본 후쿠시마 방사선 오염수 해양 방출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냈다.

 

기대했던 대로다.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오바마 2.0 이란 말을 썼다.  (바이든 정권은 보나 마나 오마바 2.0 이다.)   

 

일본은 미국에 영향력 있는 관료, 교수, 연구소 등에 엄청난 친일 장학생을 심어 놨다.   렘지어 하바드의 미츠비시 교수도  그중의 하나다. 

 

전에 읽고 이 블로그에도 소개한 

 

"일본과 그 과거의 족쇄"  표지 Series: What Everyone Needs to KnowHardcover: 472 pagesPublisher: Oxford University Press; 1 edition (December 5, 2014)Language: English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1336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Jap money"  가 어떻게 미국에 이들 "일본 장학생 중요 인사"를 만들었는가 예시되어 있다. 

 

전형적인 New Japan Hand는 학생, 군인 또는 몰몬교 선교사로 일본에 처음 온 사람들로 일본어에 능통하고 일본이 일하는 방식에 대한 암묵적인 느낌을 얻은 이들이다. 그들이 총명하고, 명료하고, 야심이 많고, 안보 문제와 미일 관계에 중요한 기타 문제에 관심을 보이면, 그들(남성)은 (뉴 재팬 핸즈는 모두 남성이다) 일본 정책 수립의 최고 수준급 인사로 리크루트 된다.  주요 자민당 입법자들의 인턴십과 일본 대학 또는 재단에서 자금을 잘 지원하는 장학생 펠로우가 된다.   즉 엄청난 일본 돈 월급을 받고 의무 없는 연수만 하는 자리다.  다만 그 과정의 모든 단계에서 돈을 대는 재단과 도쿄의 주요 의사 결정권자와는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다음과 같은 미일관계에 대한 사상에 동의해야 했다.   (아마도 이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장학금이 끊겼을 것이다. 필자주)  일본과 미국의 군사 관계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중국의 부상과 북한이 핵무기를 확보하려는 의도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더욱 중요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무역, 금융, 해결되지 않은 역사, 또는 당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든 상관없이 다른 어떤 문제도 안보 관계의 우선순위를 흐리게 해서는 안된다. 여기까지는 대부분 잘 작동했지만 개선이 필요한 한 가지 영역도 있다. 일본군은 일본의 방위를 제공하고 미군 프로젝트  군을 지원하는 데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 ( "상호 운용성" New Japan Hands에서 가장 좋아하는 용어다).이러한 노선에 따른 효과적인 주장은 도쿄의 권력 통로에 대한 더 많은 접근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워싱턴에서 영향력이 커졌다. 백악관이나 국방부에 있는 누군가가 New Japan Hand라는 주어진 문제에 대한 일본의 제도권(establishment) 의견을 알아야 하고 정확하고 유용한 독서를 했다면 그 사람은 다시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 가능성이 더 크다. 도쿄에 있는 방위청이나 외무성 (또는 워싱턴 주재 일본 대사관)의 고위 관료들은 이를 이해하고 New Japan Hands가 필요한 정보를 얻었는지 확인했다. 또 한편으로 그들은 또한 워싱턴의 주요 의사 결정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New Japan Hand를 사용했다.

 

 

 

***********

A typical New Japan Hand had first come to Japan as a student, soldier, or a Mormon missionary, where he had acquired fluency in Japanese and a tacit feel for the way Japan works. If he were intelligent, articulate, ambitious, and demonstrated an interest in security matters and other issues critical to the US–Japan relationship, he (the New Japan Hands are all men) would discover doors opening to the top reaches of the Japanese policy establishment. Internships with key LDP legislators and well-funded sinecures at Japanese universities or foundations would then follow.1 At every step along the way, however, his continued access to funding and to key decision makers in Tokyo required that the budding New Japan Hand put forward arguments along the following lines: the military relationship between Japan and the United States has been essential to keeping the peace in East Asia. It is, if anything, likely to become ever more important given the rise of China and the unpredictability of a rogue North Korea intent on acquiring nuclear arms. Thus, no other issue—whether trade, finance, unresolved history, or what have you—should ever be allowed to cloud the primacy of the security relationship. This relationship has functioned well, but there is one area that needs improvement: the Japanese military should assume a more active role in providing for Japan’s defense and helping the American military project force (“interoperability” is the favorite term of the New Japan Hands). Effective arguments along these lines translated into ever-greater access to the corridors of power in Tokyo that in turn led to growing influence in Washington. If someone in the White House or the Pentagon needing to know Japanese establishment opinion on a given issue called a New Japan Hand and got an accurate and useful reading, he or she was more likely to call that person again. Senior bureaucrats in Tokyo at the Defense Agency or the Foreign Ministry—or in the Japanese Embassy in Washington—understood this and would see to it that the New Japan Hands got the information they needed. In good time, they would also turn to a New Japan Hand to get a message across to a key decision maker in Washington.

Murphy, R. Taggart. Japan and the Shackles of the Past (What Everyone Needs to Know) (p. 319). Oxford University Press. Kindle Edition. 

*********** 

 

일본으로 기어 들어온 미국의 젊은이들 중에서 똑똑하고 영리하고 안보에 관심이 있고 야심이 있는 사람들을 리쿠르트 하여 엄청 돈을 주어 장학생으로 키워 친일 인사로 만들어 미국의 곳곳에 심어 놓았다는 것이다.

 

렘지어 하바드 대 교수도 그런 부류일 것이다.

 

일본 국민들은 가난하게 살아도 나라는 돈이 많아서 이런 식으로 미국에 뿌려 친일 세력을 심어 놨다.   트럼프는 원래 독불장군이라 이런 Japan hand 가  잘 작동하지 못했지만. 

 

전에도 트럼프를 반대하는 뉴욕 타임즈는 트럼프의 대북 정책을 훼방하기 위해 이런 Japan hand를 이용했다.  (뉴욕 타임즈는 왜 가짜 뉴스를 퍼뜨리나 – CSIS는 전쟁 장사꾼이 돈 대주는 연구소 Tim Shorrock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1677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그런데 이 CSIS 에도 Japan hand들이 수두룩하다.    그들은 미국의 행정부와 의회에 지대한 영향은 미치는데 이런 Japan hand 들이 여기저기 박혀 있으니  이 번 후쿠시마 방사선 오염수 대양 방출에 대한 지지 성명을 내 도록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그런 행동을 기획한 관료가 어쩌면 이런 Japan hand 일 가능성이 크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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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정치, 언론, 재판, 종교, 드라마, 영화, 철학 등의 공통분모는 무엇인가

 

답을 먼저 말하면 이들의 공통분모는 이들 모두가 픽션이라는 것이다.

 

며칠 전 서울 시장 선거가 끝났다.   선거철이면 항상 민주주의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고 뭔가 몇 줄씩 썼다.    이젠 그것도 신물이 난다.   항상 생각하고 쓰는 이야기인데 선거는 해서 뭣하나?

(민주주의가 죽어 가는데 선거는 해서 하나?) 

 

투표 전날(6) 자전거를 타고 나갔는데 늘 다니는 길을 막고 유세를 하고 있었다.

 

 

아직도 70년대의 유세행태를 그냥 따라하고 있다.  이런 소음공해가 과연 득표에 득이 될까?

 

 

 

당장 대체할 만한 시스템이 없다 보니 그냥 300년전 미국이 만든 이 시스템을 미국이 가르쳐 준 대로 쓰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시스템은 낡았을 뿐 아니라 틀린 시스템이다.   처음부터 민의 같은 것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유의지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투표라고 하는 짓은 뭔 가에 의해 손이 움직였을 뿐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구글이 나보다 날 더 잘 안다고 했다.   (구글이 나보다 안다고들 한다.  과연 그럴까?    알아보았다.     구글에는 정보가 어마어마하게 쌓이고 있었다.)

 

 그리고 유발 하라리는 구글이 나보다 더 투표를 더 잘할 것이란 이야기도 했다.

 

자유민주주의자가 가장 중시하는 선거제도는 쓸모 없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구글이 나 자신보다  내 생각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투표장 칸막이에 들어갔을 민주주의의 신념은 깊은 곳의 진정한 자아가 시키는 대로 어느 정당 어느 후보를 찍으라고 명령할 것이다.   그러나 최신 생물학이 발견한 사실 지난 4년간 겪었던 모든 것을 기억해 내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보고 들었던 선전, 광고, 티비 뉴스 같은 것이 기억을 마구 왜곡시킨다.  Kahneman 실험을 보면 최근의 일들과 사건이 지난 4년간의 심사숙고했던 기억들을 마구 훼손하고 왜곡시킨다.

 

........

 

구글은 내 순간적인 마음의 상태와 기억들이 아니라 그 시점까지 내 생물학적 알로리즘이 주는 필링과 관심사들로 구성된 내 진정한 자아"I"를 알고 그 뜻에 따라 투표한다.”

 

 

이 모든 것의 근원은 이 글의 제목에서 시사했듯 제목에 나열한  모든 것들이 단순한 픽션이란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 것들이 픽션이 아니고 과학이었다면 논쟁은 거의 없다.   과학은 이론이지만 새로운 실험이나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진실로 받아들여져 대부분의 사람이 수긍한다.

 

그런데 이것을 믿지 않고 픽션에 집착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세상은 시끄럽고 난장판이 되는 것이다.

 

요즘 나는 진화론 중에서도 문명 진화론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새물학적 진화와 공동 진화한 문화 진화론은 우리의 지식이 진화의 과정에서 중요한 항목이 되고 생물학전 진화(뇌의 진화)와 맞물려 인류가 번성하게 되었다는 진화론이다.

 

아쉽게도 이 문명진화론 책은 번역판이 나온 것 같지 않다.

 

이 진화론은 인류가 우연하게 발견한 지식(예컨대 도구를 쓰는 법)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문명 진화론은 생물학적 진화와 함께 이루어진 것이다.    지식이 양이 커지면서 그것을 수용할 뇌가 커지고 그 지식을 전수하는 생물학적 기능 즉 인지 혁명이 일어난다.   여기서 거짓말 즉 픽션이 탄생한다.

 

뇌는 처음에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감각기관의 정보를 "뛰어라"와 같은 운동신경에 명령을 내리는 FAP(fast action pattern)으로 존재하다가 설명을 붙이는 픽션으로 진화한다.   그리고 그 픽션에는 거짓이 섞이게 되고 이야기(fiction)를 만들어 내고 사람들에 퍼뜨린다.   

 

이 픽션은 대량 동원체계를 만들어 다른 경쟁적 유인원을 몰살시키고 승자로 진화한다.   

 

문명 진화론에서 가장 큰 획을 그은 사람은 뉴턴이다.    그래서 빅 히스토리 책의 한 도표에서 뉴턴을 부각하고 있다.  

 

 

"Big History"의 책 제목은 시간의 지도(Maps of Time)다.  책의 표지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1095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이 책의 한 페이지에 도표 하나가 있다.   근대 1000년의 타임 스케일을 나열하고 거기서 획기적 사건을 표시하고 있다. 

 

이 도표에는 300여년 전 즉 미국의 독립전쟁 직전에 뉴턴이 나타난 것이다.

 

미국 독립전쟁 때 만들어진 민주주의는 망해 가는데 뉴턴이 가르쳐 준 세상을 보는 법은 더욱더 번창하고 있다.

 

뉴턴은 무엇을 가르쳤나.   세상을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한 명언이라는 전해지는  "세상이 이해가 된다(수학적으로)는 것이 미스터리 중에서 미스터리다"라는 말을 곱씹으면 사실 이런 미스터리는 없다.   

 

그것을 뉴턴이 알아낸 것이다.   그의 주 저서인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라는 책은 기가 막힌 미스터리를 세상에 알린 책이다. 

 

1686년에 출판된 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라는 책은 세상을 보는 눈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물리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본 보기를 보여 준 책이다.    이 방법을 따라한 뉴턴 이후의 물리학자들은 오늘의 과학문명의 바탕을 깔아 준 것이다.   

 

스토리를 만들어 내되 수학의 논리로 만들어 내면 거기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어진다.    그리고 다음 세대의 물리학자들은 이 뉴턴의 방법을 따라 해서 오늘날의 과학문명을 이루어 냈다.

 

오늘 날 그 과학은 인간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좌뇌는 이야기를 지어내고 거기엔 픽션까지 섞어 넣는다.  너무 지나치면 우뇌가 간섭을 하고 제지하지만 거짓말을 그럴듯하게 지어내고 퍼뜨리는 것은 이미 DNA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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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모두 비 의식적 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사후 관찰한 사실을 사용하는 사후 설명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좌뇌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말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사실을 조금씩 날조한다. 이야기가 사실에서 너무 멀리 벗어날 때쯤 되어서야 비로소 우뇌가 개입하여 좌뇌에 제재를 가한다.


출처: 평화를 염원하며 - 다시 읽는 환원주의 역사관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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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단순히 꿈꾸는 기계에 불과한데 지나치게 존중을 받고 거기에 모든 것을 거는 낡은 시스템으로 세상을 움직이려 하고 있다.   

 

꿈꾸는 기계의 진화는 Rodolfo Llinas 가 쓴 <i of the vortex>의 우리말 역서의 책제목이다.

 

옛날에 썼던 "꿈꾸는 기계 길들이기"에서 옮겨 온 그림이다. 

 

요즘 우리의 종주국 수령 바이든은 인권 인권 떠들어 대는데 참으로 가소롭다.   

 

그렇다고 중국 공산당이 위구르족을 또는 티베트 사람들을 억압하는 것을 묵인하라는 뜻은 아니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지구 상의 모든 생명은 존중받아야 한다.   단지 인간이 더 중요하고 값어치가 있다는 생각은 틀린 생각이란 뜻에서 한 말이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값어치는 계속하락 하기 시작했다.   

 

 

 

 

 

 

 

일독을 권할 만큼 잘 쓴 책이다. 또 한글 번역도 근래에 보기 드물게 훌륭하다.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1414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내가 강조하는 것은 제발 좀 깨달으라는 것이다.   우린 유기물질로 만들어진 기계에 불과하다.   실리콘으로 만든 기계보다 우수한 점도 있지만 또한 못 한 점도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좀 더 겸손해질 것이다.  

 

허황된 픽션으로 싸우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 자신의 뇌로는 감당을 못하겠거든 실리콘으로 만든 기계에게도 의존하라는 것이다.   지어낸 거짓말을 가지고 신물 나게 싸우지 말라는 것이다.

 

300여 년 전에 만든 시스템을 금과옥조처럼 떠 받들지 말고 모르면 실리콘으로 만든 기계에라도 물어보라는 것이다.   육법전서나 달달 외어 대단한 엘리트 인양 으스대는 찌지리들보다 AI 나 big data 가 훨씬 훌륭한 답을 줄 것이다.  

 

모르면 oㄱㄹ 나 닥쳐라.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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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팅에서 아이폰6와 갤럭시 S20 울트라 이야기를 썼다. 

 

내가 두 개의 폰을 쓰기 시작한 것은 갤럭시 S7 엣지를 사면서였다. (https://boris-satsol.tistory.com/1422)

 

2016년 5월경이다.   처음에는 카메라(망원과 광각)와 VR가 궁금해서였다.  그러다 아이네비의 자전거 블랙박스 앱을 썼다.   아이폰으로는 이 앱이 잘 작동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S7이 고장이 나서 고치는 값보다 새로 사는 편이 나을 것 같아 갤럭시 S20 울트라를 샀다.    작년(2020년) 5월 경이다.  S21이 나왔으니 이젠 구형이 되었다.

 

그런데 몇 주전에 잘 쓰던 아이폰6가 나갔다.   처음에는 배터리가 빨리 방전해서 배터리 문제로 알았다.  사실 이 배터리도 선릉로에 있는 ubase에서 교체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상했다.  

 

아이폰이 내겐 꼭 필요한 것이 내가 써야하는 보청기가 "made for iPhone"이라 이 보청기용 앱이 아이폰에만 있기 때문이다. (코스트코 보청기 - 안드로이드에서는 안된다.)

 

그래서 지난 4일(2021년 4월)이 일요일인데도 가로수길에 있는 Apple Store에 시간을 예약하고 찾아갔다.   배터리 문제가 아니라 아이폰이 갔다는 것이다.  아이폰12는 만만한 값이 아니다. 

 

고칠 수는 없고 아직도 아이폰6 refurbished 한 것이 있으니 그것과 바꿔 가라는 것이다.  값은 부과세 포함 34만 1천1백 원이라고 한다.    얼마를 더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당장은 보청기 앱 "KS Choice"와 "MotionX"만 아이폰에서 쓰는 앱인데 MotionX는 요즘 잘 쓰지 않는다.  새 길을 개척하는 것도 아니고 안 가본 길을 가는 일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굳이 비싼 돈을 들여 새 아이폰을 사는 대신 쓸 수 있을 때까지 아이폰6 리퍼브를 사서 쓰기로 했다.  

 

또 하나 이 헌 아이폰6를 더 쓰고 싶어 했던 것은 며칠전에 카드가 삽입되는 아이폰6용 범퍼 케이스를 하나 샀기 때문에 이것이 아까운 점도 있었다.   케이스 값이야 단돈 만원이니 버려도 되지만 그래도 그 범퍼 케이스가 맘에 들어 그것을 쓰고 싶은 생각도 많이 작용했다.

 

아직도 아이폰6의 케이스를 팔고 있다니!

 

아이폰 범퍼케이스와 카드 삽입구

 

카드를 밀어 내어 쓸 수 있게 해 주는 밀어 내기 홈이 있다.  

 

티모니가 달린 이 카드는 시니어전용 신한카드다.  전철(무료), 버스, 택시를 탈 때 유용하다.  블랙 전자파 차단막 카드를 폰 쪽으로 함께 넣으면 아이폰을 티모니 장착한 갤럭시 폰처럼 쓸 수 있다.  또 시니어 카드이니까 전철은 노인 무료로 인식된다. 

이제까지는 투명 범퍼케이스에 테이프로 카드와 차단 막 카드를 붙여서 보기 흉했는 아주 깔끔해졌다.   그래서 이 케이스를 쓰지도 않고 버리게 생겨서 아쉬웠던 것이다. 

 

리퍼브가 얼마나 갈런지 알 수 없지만 한 1년만 버텨 주어도 아이폰 13을 살 수 있으니 그게 어디냐?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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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내 아이폰의 usim 칩을 갤럭시의 칩과 교환했다.   아이폰은 6년 된 아이폰6이고 갤럭시는 작년에 산 S20 울트라다.    갤럭시 폰을 사진용으로만 쓰기엔 아까운 폰이라 내 메인 폰으로 사용할 생각을 했다. 

 

아이폰의 전화번호가 갤럭시의 전화번호로 바뀐 것이다.     그러니까 내 아이폰으로 통화하던 모든 연락처가 아이폰에 그냥 남아 있으니 통신의 교란이 생긴 것이다.     

 

메인 전화번호가 갤럭시로 갔는데 갤럭시에는 아이폰에서 쓰던 연락처가 없다.   그래서 아이폰에서 전화를 하면 받는 사람은 나를 인식 못한다.  전화번호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이폰의 연락처를 갤럭시로 옮겨 오나 한참 고민하다 문제를 풀었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방법을 알아냈다.

 

인터넷에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상담하면 보면 광고가 뜬다.   소프트웨어를 깔아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이런 광고에 속으면 골탕을 먹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무료인 경우 함께 딸려 오는 소프트웨이어가 무단으로 깔리고 그것을 지우기란 쉽지 않다.   

 

내 컴퓨터를 마구잡이로 휘져놓고 또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무른모는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지울 수도 없고 결국 극단적인 방법 즉 최근에 받아 놓은 백업으로 복원하여 한 동안의 데이터나 무른모를 다 잃게 된다.

 

그래서 아이폰 또는 갤럭시(안드로이드)의 무른모만 써서 옮기는 법을 찾아 내어 500 여개의 연락처를 아이폰에서 갤럭시로 가져왔다.

 

1.  우선 아이폰에서 내 연락처를 모두 iCloud로 저장해 둔다.   

2.   그리고 내 PC에서  iCloud에 들어가 연락처가 저장되었는지 확인한다. 

 

내 PC에서 iCloud 를 열어 보면 그 하위 연락처라는 하위 폴더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3 iCoud Drive를 연다. 

 

PC 화면에 내 iCloud 계정이 뜬다. Contacts라는게 내 연락처다.

 

4. 이 연락처를 연다.

 

연락처 내용이 뜬다.

 

5.  왼쪽 아래에 설정 메뉴가 보인다.   그것을 열고 모두 선택(Select All)을 하고 이것을 이것을 vCard로 내 보내기(Export)한다.

 

Select All

 

 

그리고 Export vCard 한다.

 

6. 그러면 이 내 보내기 한 파일이 다운로드 디렉터리에 다운로드된다.

 

다운로드 디렉토리에 다운로드된 vCard 파일 유형은 vCalendar 파일로 뜬다. 

 

7.  이 번에는 google 계정에 들어간다.  갤럭시폰을 구글 계정에 연동해 놓으면 사진 등 갤럭시폰의 파일들이 연동된다.  아이폰과 아이클라우드의 관계다.

 

구글계정의 오른쪽 위의 메뉴버튼을 누르면 내 계정의 각 항목이 보인다.  그 중에서 연락처(Contacts)를 클릭한다.

 

 

Contacts(연락처)를 클릭하면 갤럭시의 연락처가 뜬다.   이미 아이폰 연락처를 옮겨 놨기 때문에 주-욱 연락처가 뜬다.  왼쪽 메뉴에서 import를 누른다.

 

그러면 바탕화면은 비활성화하고 들여 올 파일을 고르라는 창이 뜬다.   이 때 download 창에 가서 아이폰에서 다운 받은 vCalendar 파일을 선택하면 import가 시작되고 구글의 연락처에 이 vCard 파일이 내 갤럭시 연락처에 첨가된다.

 

8. 갤럭시폰에 가서 연락처가 첨가되었는지 확인한다.

 

아이폰에 있던 연락처가 들어 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내 PC는 Google Chrome을 브라우저로 쓰고 위의 과정도 모두 이 브라우저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다른 브라우저인 경우 화면이나 메뉴가 다를 수 있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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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노인의 전설, 인연의 빨간 실 첫 데이트 60주년

 

부부의 연은 어떤 연 보다 질기고 길고 막중하다.   대부분의 부부는 자식을 낳고 키우고 그래서 부모 자식의 인연을 만들고 그들이 결혼하여 자식을 낳으면 또 그 연은 이어지고 그들이 또 짝들을 만나 결혼하고 자식을 낳으면 계속 인연은 이어진다.

 

우리 부부가 너는 우리 비타민이야하고 귀여워하는 손자도 따지고 보면 우리 부부의 만남의 산물이다.  

 

부부의 인연은 태어날 때 이미 정해진다고 한다.   중국에서 연유한 빨간 실의 설화는 짝이 되는 남녀에게는 태어날 때 빨간 실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내 환원주의 세계관으로 보면 맞는 말이다.  Causality(인과율) 라는 물리학에서 잘 쓰는 용어는 자연현상에서 일어 나는 현상은 인과율에 벗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초자연현상을 믿는 사람들이 많기는 많다. 

 

과학이 발달하면 할 수록 처음에는 초자연현상이라 믿었던 현상들이 다 과학의 영역인 자연현상으로 들어왔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causality에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어떻던 causality 와 환원주의 세계관을 갖고 있는 나에겐 빨간 실의 설화는 단지 설화가 아니라 진실이다.  

 

우리 부부 둘은 1 1개월 24일 간격으로 태어났고 태어나는 순간 우리 둘은 부부의 인연으로 맺어진 것이다.  다만 아무도 그것을 알 수 없달 뿐이다. 

 

캐오스 이론이 밝혀지고 제임스 글리크의 책 Chaos가 세상의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대부분의 세상사는 긴 시간으로 보면 모두 Chaotic System이고 이 시스템의 미래는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하다는 것(inherently unknowable)을 이해하게 되었다. 

 

제임스 글리크의 "카오스".  한글 번역판은 1993년에 나왔다.

 

이 책을 번역한 두 사람은 모두 서울대 물리학과 내 제자들이다. 고맙게도 번역본 한 권을 보내 줬다.

 

다시 말해 인과율은 성립하되 미래는 본질적으로 알 수 없다는(inherently unknowable) 것이다.

 

운명의 남녀다. 둘 사이엔 보이지 않는 빨간 끈이 매여 있었는지 모른다. 왼쪽은 1942년 4월 18 일 촬영하였고오른쪽도 거의 같은 때로 추정된다.이들은 19년 후인 1961년 6 월 16 일 결혼한다. 왼쪽은 일본 오사카에서 찍은 사진이고오른쪽은 한국의 서울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두 남녀는 미국 시애틀에서 처음 만났고 둘은 1961년 4월 1일 첫 데이트를 한다.   내 데이트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그리고 실제로 둘이 함께 영화를 봤다는 것은 내 고백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시체 말로 하면 그저께인 2021년 4월 1일은 우리의 "데이 60년"이다. 

 

재작년에도 우린 데이 58년 기념라이딩을 했다.    그래서 그저께도 데이 60년 기념라이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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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April Fool's Day 라 기억하고 있다.  

 

코니를 만난 것은 그 전년 1960년이 저믈어 가던 12월 말이었다.    University of Washington의 Winter Quarter 가 시작되자 캠퍼스에서 자주 만났지만 첫 데이트를 신청하고 함께 영화를 본 날은 1961년 4월 1일이었다.  아마도 Spring Quarter 가 시작하기 전 며칠간의 휴가기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날 본 영화는  새로 개봉한 "The World of Susie Wong" 이었다.   William Holden (Stalag 17 - "제17 포로수용소"에서 명연기를 펼쳤던)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였다.

 

그때 코니는 Mrs. States라는 혼자 살고 있는 이혼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주말에 이 중노 부인은 Cameno island의 별장에서 지내기 때문에 우리가 데이트 한 날은 아마도 주말이 었던지 코니가 사는 아파트에 나를 데려갔다.

 

아이스크림을 대접하겠다고였는데 아이스크림을 퍼 주고 숟가락을 주지 않았다.   "숟가락은요?"  하고 내가  한 말에 무척 당황해 하던 모습을 55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후 우린 파멸적  열애에 빠졌고 내 Spring Qauarter 의 중간시험은 엉망이었다. 

2007/06/27 - [일상, 단상/사랑, 운명, 인연] - 운명의 인연

 

첫 데이트 후 두달하고 16일 되던 1961 년 6월 16 일에 우린 결혼했다.

 

첫 데이트후 그 2 달 반은 악몽이었다.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1415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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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돌이켜 보면 우리의 인연은 너무 운명적이란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내가 아내를 만나기 전에 아내와 너무 가까이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1960년 8월 내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나는 서울 혜화동 두 째 누님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아내는 내가 살 던 곳에서 직선거리로는 불과 35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아내가 고3 근방일 때 그리고 내가 문리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을 때 쯤 아내는 내가 사는 곳에서 불과 35m 떨어진 곳으로 이사 왔고 내가 1960년 8월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살다가 아내도  그 해 12 월경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애틀로 따라왔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살던 두 째 누님댁은 혜화동 10번지 9호였다.   아내는 거기서 직선거리 35 m 떨어진 거리의 한옥에 내가 미국유학을 떠날 때까지 한 5년 살았다.  두 집은 서로 몰랐지만 우리집의 이웃 몇집은 아내의 집도 잘 아는 공동 이웃이었다.  

 

당시의 세류는 청소년의 남녀가 쉽게 만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직도 결혼은 중매위주였고 중매쟁이 매파는 서로 비슷한 사람끼리 연결해 주었고 연애나 자유 만남 같은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아내와 나는 연결고리는 있었다.   

혜화동누님집에서 가까운 곳에 625 전쟁 때 일본으로 돌아간 둘째 누님의 일본인 동서의 집이 있었다.   집을 비우고 전쟁 때 가족을 모두 동반 일본으로 갔기 때문 그 집은 비었었고 두 째 누님이 관리하고 있었다.  

 

거기에 내 재당질녀(7촌조카)가 안양 친가의 동네에 사는 같은 학교 반우를 데리고 그 빈집에서 자취를 했다.    나도 빈 집이기 때문에 자주 가서 그 집에 있는 영문 타자기를 연습하곤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지만 그 두 여학생이 아내와 한 반이었던 것이다.    아내는 "후라빠"라 불릴 만큼 끼가 있는 여학생이었던 반면 내 당질녀는 전교 1등을 하는 모범생이었다.   서울대학교 의대를 수석 합격할 만 큼 공부를 잘했다.   그런데 함께 자취했던 여학생은 내겐 별로로밖에 안 보였다.  공부는 잘해서 서울대 사대에 들어갔지만  내 관심밖이었다.

 

그러니 아내가 내 운명의 짝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나를 연결시켜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내 당질녀는 한 때 초딩인 내 처제(7살 터울) 가정교사 노릇도 조금 했다고 했다.  아내의 집에도 들락거릴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사실 사춘기인 나도 이성에 대한 갈구를 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다음 그런 생각을 한 일이 있다.  "내 짝은 어디에 있을까?"   20살 안팎의 나이니 이성에 대한 욕구가 솟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내가 20살 연하와 결혼할 확률은 당시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니 "내 짝은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텐데 어디에 있을까?" 궁금했던 것이다.  알았다면 연애라도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불과 35m 거리밖에 안 되는 곳에 살고 있었고 또 자주 보는 내 재당질녀와 동급생이었다니....    뭔가 조금 아쉽달까 억울하달까 하는생각이 든다.

 

내 재당질녀는 서울의대 수석 합격할 만큼 공부를 잘했으니 아내는 노트도 빌려 공부도 했다고 한다.   아내도 E 대에서는 커트라인이 제일 높은 영문과에 합격했으니 공부도 못한 편은 아니다.  그 정도로 친했는데....

 

당시 고딩이었던 아내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며 내 미래의 짝을 그리워했는데  6년 후에 이역 만리에서 만나 열애에 빠져 첫 데이트 후 두 달 반 만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긴 세월이 흘러 이제 diamond anniversary(결혼 60주년)를 두 달 반 남기고 있다.

 

언젠가  몸이 아파 우울했던 날 부질없는 망상을 하고 여기에 글을 쓴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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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에 듣고 좋아했던 노래가 바로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였다.  세레나데는 애인을 위해 부르는 노래다.   그런데 왜 그 노래는 애조를 띄웠는가?      슈베르트의 가곡은 하나같이 슬프다. 

 

youtube.com/watch?v=Cw23vYfkOZ0

 

그런데 유독 이 노래가 더 슬피 들리는 것은  어쩌면 연애 한 번 못해보고 떠내 버린 내 청춘이 회한이 되어 그리 들리는지 모른다. 

 

그때 아내는 내가 살던 혜화동 누님 집에서 불과 30~40 미터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이제 52 년째 해로하고 있는 고딩이었던 그녀를 위해 그 세레나데를 내가 부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망상을 해 본다.

2007/06/27 - [사랑, 운명, 인연] - 운명의 인연

  

난 그녀의 집 창가를 수없이 지나다녔는데 내가 이 노래를 불러 그녀를 불러 낼 수는 없었을까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본다.   ( 2007/07/02 - [사랑, 운명, 인연] - 인연의 나선 궤적을 따라서 )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search/슈베르트의 세레나데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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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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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21.04.05 09:06

    '첫 데이트 6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인과율은 성립하되 미래는 알수없다' 는 과학이 더 발달하면 '인과율이 성립하므로 미래도 알수있다'로 언젠가 바뀔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ㅎ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21.04.05 10:07 신고

      감사합니다. 아쉽게도 영원히 미래는 예측불가로 귀결될 것 같습니다. 무한 정밀도의 초기조건이라는 말은 내재적으로 한이 없다는 말이니 유한한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전지전능한 신이라는 것을 상상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