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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여행에서 옛 친구 둘을 찾다. 본문

해외여행기/네덜란드 2014

여행에서 옛 친구 둘을 찾다.

샛솔 2014. 8. 23. 20:33

여행에서 친구 둘을 찾다.

 

이 번  네델란드 여행에서 옛 친구 둘을 찾았다.     한 친구는 네델란드에서 만났고 또 한 친구는 아직도 한국에 있어 오늘 만났다.  

 

네델란드 여행중에 찾았다는 것은 맞지만 한 친구만 네델란드에서 만났고 한 친구는 인테넷에서 찾아서 오늘 서울에서 만났다.

 

사람이 살다 보면 스치는 인연중에 친구가 있다.    한 동안 친히 지내다가도 어찌어찌 하다 인연이 끊기고 잊거나 잃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 번 여행 중에 찾은 친구는 젊은 날에 만났던 친구들이다.    1954년  1955년에 처음 만났던 친구들이다.  

 

하나는 해군사관학교 bottom(최하급생 = 일학년생) 시절의 만났던 J 라는 친구요, 하나는 이듬해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들어와 만났던 L 이란 친구다.  

 

해군 사관학교 bottom 시절의 친구 J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사관학교에서 사귄 몇 안되는 절친중의 하나요,  물리학과에서 들어 와 사귄 동급생은 대학시절 내내 만났고 또 군대를 같이 가서 함께 병영 생활도 했다.

 

성격으로 보면 J 는 과격하고 저돌적인 면이 나완 반대되는 성격이고 L 은 고지식하고 나보다도 더 훨씬 모범생이다.    그러니까 난 그 중간쯤 되는 성격이라 할 수 있다. 

 

둘 다 내가 1960년 한국을 떠나 유학을 간 후엔 별로 만날 기회가 없었다.   J는 그 후 내가 귀국하여 모교에 봉직하게 될 때 쯤은 아마도 한국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일찍이 네델란드에 와서 무역사업을 했던 것 같다.   J 역시 나와 마찬 가지로 해군사관학교를 중퇴하고 고대에 들어가 고대를 나왔다.

 

L도 나처럼 1960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후 미국에서 미국인 아내를 맞아 미국에서 살다가 90년대에 돌아 왔으니 오랫동안은 만날  수 없었다.     그는 Penn State 에 대학원을 다녔으니 시애틀에 있던 나와 편지 연락은 가끔 했어도 만나기는 어려웠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엔 처음엔 Westing House 엔가에 잠간 있었던 것 같고 다음엔 미 해군 연구소에서 오래 근무했다.   귀국을 오랫동안 못했던 것은 아내때문이었을 것이다.

 

90년대 돌아와 후배교수가 대학에 자리를 하나 마련해 주었지만 "평생 연구소에서만 일했는데 이제 무슨 새삼스레 교수냐 무슨 자격이 있다고" 라고 했다고 한다.    얼마나 고지식한 사람인가!       그리고는 누님 내외의 투자를 받아 작은 회사를 차렸다.    통신장비에 드는 핵심부품을 개발 연구하는 회사였다.   처음엔 정부의 지원도 받았던 모양이다.     그 때 한창 벤쳐기업이 나올 때였다.    별 시시콜콜한 회사들이 코스닥에 상장하고 개미들의 돈을 빨아 먹고는 망하던 시절이었다.   몇번 만났던 L 에게 농담삼아 코스닥에 상장하고 돈좀 벌어보지? 하면 정색을 하곤 그건 사가잖아라고 하던 고지식한 친구다.

 

어제 만났는데 아직도 그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고객이 이스라엘과 중국이란다.   그래서 자주 이스라엘과 중국 출장을 간다고 했다.    무언가 특수한 통신장비의 핵심기술인 듯 하다.   깊이 물어 보지는 않았다.  

 

여행을 하다보면 여수를 느낄 때가 많다.    코니는 거실에서 아이패드로 ebook 을 읽고 있고 난 침실에 누어서 아이패드로 이것 저것 브라우징을 하면서 옛날로 돌아 가 상념에 빠졌었다.

 

L과는 대학시절에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다.  난 혜화동 누님집에 살았고  L은 이화동의 커다란 한옥에 살고 있었다.   우리가 다니던 대학을 가운데 두고 거의 같은 거리의 난 북쪽,  그는 남쪽에 살았던 셈이다.   대학천변(지금은 복개되어 사라진)을 오가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언젠가  2012/07/11 - [이것저것/오카리나, 음악] - 오카리나 - 더 바빠진 나의 일상 에 적었던 그 L 이란 친구다. 

 

그 L 생각이 난 것이다.     L은 은퇴후에도 1년에 한 번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너댓번은 만났다.  적어도 1년에 한번은.

 

마지막으로는 회사에 전화를 걸었을 때 회사의 비서가 L이  자전거를 타다 크게 다쳤고 당시엔 미국에 체류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메일도 전화도 사라졌다.

 

난 L 이 아내를 따라  함께 미국으로 돌아 갔고 회사도 접은 줄 알았다.      그래서 7,8년 소식이 끊긴 것이다.    네델란드 호텔 침실에서  그 L 생각이난 것이다.    살아 있겠지?     이젠 우리 나이의 옛 친구가운데 세상을 하직했다는 소식을 자주 듣는다.      100 세시대라 해도 그건 다만 평균일 뿐이다.

 

미침내 L을 찾아냈다.     L의 딸의 이메일의 주소를 알아낸 것이다.      대답이 없어 다시 한번 email을 보냈다.  L의 딸인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아니더라도 답신을 달라고 보냈다.    내가 찾는 사람이 my dad 이 맞는다고 한다.   1차 편지를 L 에게 전달했는데 중국 출장이중아라더니 답신이 없었나 봅니다 라는 회신이 왔다.     마침내 L 에게서 회신이 왔다.      옛날 email 주소는 죽은 것이었다.   kornet 였는데 KT 란 회사는 "파란"도 죽이더니 email 주소도 다 죽여 놨다.   

 

그래서 오늘 만난 것이다.   아무리 연구소 같은 회사라 해도 L이  아직도 비즈네스를 한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

 

네델란드에 살고 있는 J 는 7,8 년전에 한국에서 만났다.    아이들을 모두 네델란드에서 키웠지만 큰 며느리는 한국에서 맞어 그 결혼식에 갔었다.   며느리감은  내가 은퇴하던 해 전후해서 물리학과에서 시작한 BK project 에서 일한 일이 있어 날 알고 있었다.       난 결혼식이 수원 어느 성당에 있어 수원의 그 성당에 찾아 가느라고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갔던 기억만 남아 있다.    그것이 J 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네델란드에 살고 있는지 귀국해서 살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서울을 떠나기 전에 검색해 보니 네델란드의 한인 주소록인가 하는 곳에서 H Trading 이라는 업소명과 주소와 전화번호가 나왔다.      모두를 클립해다 내 전자 노트에 기록해 두었다.  암스테르담에 가면 전화를 해 볼 생각이었다.      주소를 검색하니 구글에 거리뷰까지 나온다.   그 주소록에 있는 집까지 볼 수 있었다. 

 

전화를 걸어 보니 J 가 그 주소에 살고 있었다.    반가운 응답이었다.  날짜를 정하고 찾아 가기로 했다.   처음에 Rotterdam 까지 가서 자전거를 타고 갈 생각이었지만   거리를 재어 보니 26 킬로가 된다.  일방은 되어도 하루에 갔다 오긴 너무 멀다.    자고 가라는 초청을 받았지만 호텔 이외의 친구나 친척의 집에서 자는 건 익숙치 않고 잠도 잘 오지 않는다.   작년 겨울 LA에서 제자 집에서 다른 제자들과 함께 늦게 까지 술 마시고 놀다 하루 잔 것이 마지막으로 지인의 집에서 한 번 자 본 것이다.  술을 마시고 밤 늦게 운전하는 게 싫어서였다.   아무래도 호텔 체질이라 사양했다.

 

J 의 집은 Rotterdam 시내가 아니었다.    거기서 metro 를 타고 Zuidplein 에 가서 다시 버쓰를 타고 가야 하는 Numansdorp 라는 "시골" 이었다.    

 

첫번째 방문은 암스테르담에 산다는 J의 아들 내외가 우리 호텔까지 와서 차로 데려가고 차로 데려다 주었다.  휴가갔다 돌아와서 부모집에 가는 길이라지만 아무래도 우리가 J의 집을 찾아 가기가 버거울 것 같아 생각한 우리에 대한 배려 같았다.     J의 부인은 코니보다 네댓살 작아서였는지 넘 많은 음식을 차려 우리를 맞았다.

 

J는 얼마전 Stroke 가 와서 한쪽을 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러나 마음과 생각은 여전히 건강하고 옛날 성격대로 씩씩하고 털털했다.    

 

우리는 옛날 얘기를 많이 했다.   우리 나이엔 아흡번까지 용서된다던가.    사실 난 까맣제 잊고 있던 이야기도 있었다.  

 

돌아와서 1 주일 후에 다시 J의 집을 방문했다.    암스테르담에 언제 또 오겠는가!   날을 받아 놓지 않았다 해도 우린 언제 누가 먼저 이 세상을 뜰지도 모른다.     그래서 두번째 방문은 귀국하기 며칠전 벨기에에 다녀 온 다음 갔었다.  열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버스정류장에 내려  걸어서 찾아 갔다.   구글 지도를 보면서 갔지만 다 가서는 집을 알아 보지 못했다.  너무 비슷한 집들이라 혼동을 했는데 바로 앞에 와 있었다.      전화를 걸었더니 바로 앞에서 현관을 열고 J의 부인이 나왔다.

 

브뤼셀에서 소마치기 당한 이야기가 새로 생긴 이야기거리가 되었다.  돈은 조금 잃었어도 이야기거리 하나는 건졌다. 

 

돌아 오는 길도 타고 온 버스를 타고 Zuidplein 까지 와서 메트로로 갈아 타고 열차편으로 돌아 왔다.   Rottedam Centraal 은 우리 역까지 한시간 조금 더 걸린다.      네델란드 열차시스템은 참 잘 되어 있다.   나라가 작다 해도 이런 대중교통수단과 자전거 인프라 때문에 거리감이 거의 없다.

 

두 옛 친구를 찾은 것은 이번 여행에서의 큰 소득이었다.

 

 

 

 

일찍 떠나 일찍 오려고 아참에 일어 나 시간에 되는 뎨로 일차를 타고 색드위치라도 사서 먹으려 했지만

식욕이 일지 않아 Rotterdam 역에서 아참을 사 먹었다.

 

 

 

메트로를 타고 Zuidplein 버스역에 나오니 버스가 막 떠난 다음인 듯 했다.

시간 표엔 발차시간 간격이 30 분인데 여름 방학기간이라 1시간 간격이란다.

 

 

 

버스에서 내다 본 시골 풍경

 

 

 

Zuidplein 에서 탄 승객은 우리 둘 빼고는 앞자리의 승객 한 사람이 더 탔을 뿐이었다.

 

 

 

우리 뒷자리도 텅텅 비어 있다.

 

 

 

자전거길이 차도와 나란히 나 있다.

 

 

 

 

시간만 넉넉했다면 우리도 자전거를 타고 올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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