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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 민주주의를 꿈꾸며 - 테크놀로지가 국회의원을 몰아 낸다. 본문
유동 민주주의를 꿈꾸며 - 테크놀로지가 국회의원을 몰아 낸다.
또 다시 선거의 계절이다. 선거의 계절이 되면 또 다시 민주주의의 문제가 내 심각한 연구 대상이 된다. 지금 한반도의 정세는 급변하는 물살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앞으로 몇달사이에 한반도의 역사가 전환점을 맞을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힘을 모아 그 물살에서 순방향을 타고 가게 노질을 해야 하는 때인데 선거와 맞물며 소모적인 정쟁에 휩쓸려 있다.
내가 이 블로그에서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글을 여러 번 썼다. 또 민주주의를 비꼬는 책, “민주주의의 반대한다”라는 정치철학 책도 소개하기도 했다.
<투표하지 마라. 그건 개새끼들만 신나게 해 주는거다> - "Don't Vote It Just Encourages the Bastards"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743?category=113416 [지구별에서-MyLifeStory]
<갈보들이 모인 국회(의회)> - Parliament of Whores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746?category=113416 [지구별에서-MyLifeStory]
민주주의를 반대한다 출처: http://boris-satsol.tistory.com/1510?category=113416[지구별에서-MyLifeStory]
대의 민주주의가 사망했다는 이야기는 이젠 밥 먹는 일만큼 흔해졌다.
왜 그렇게 되었나?
말(horse)이나 마차가 교통수단이고 우편마차가 통신수단이던 시대에 맞추어 개발되었던 대의 민주주의는 이젠 고물이 된 것이다.
민주주의란 국민, 또는 시민이 선거를 통해서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방법이 너무 구식이 되어 21세기에 맞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맞추어 대의 민주주의라는 것이 발명되었다.
직접 국민 또는 시민의 뜻을 모을 수 없기 때문에 대표자를 뽑아서 그 권리를 위임하는 것이 대의 민주주의다. 민주주의가 정착할 때인 18세기 때 만들어 진 것이다.
그런데 그 대표자라는 사람들이 누군지 알지 못하니까 정당이라는 것을 만들어 거기에서 민의라는 것을 대변하는 정책들을 내 걸고 그걸 보고 자기네 정당에 속한 대표자를 뽑아 달라고 한 것이다. 정당의 유래다.
그래서 정당은 민의와 정부의 중간역할을 할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운영되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주객이 전도되었다.
정당은 거대한 준 국가기관으로 변신한 것이다.
며칠 전에 거대야당인 한국자유당 당수가 대통령과 독대를 했다. 과연 그는 무슨 자격으로 대통령을 독대하는가
홍준표 당수는 아무 공직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한자당은 정부기관도 아니다. 엄격히 말하면 정당은 사조직이다. 거기서 저의끼리 당수를 뽑아 놓은 것이지 국민의 대표자가 아니다. 그런데 그 당수가 정부의 어느 공직자 (선출직, 임명직을 포함) 보다도 더 권력을 행사한다.
헌법 어디에도 정당의 당수가 국사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
민주주의를 가르쳐 준 미국에도 정당은 정부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선거를 위한 보조 기관일 뿐이다. 미국 헌법에도 정당의 지위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런데 현대 정치에서 정당히 너무 비대하고 강력해진 것이다.
저의끼리 당론이라는 것을 정하고 그것이 자기들이 대변하는 민의라고 강변한다.
민의가 그게 아니라고 해도 유권자는 4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유권자는 막상 선거때가 되면 내가 왜 그 개xx에게 화가 났었지? 잊어 버린다.
오늘같이 정보가 순식간에 퍼지는 시대에 살면서도 대의 정치는 그런 정보화 사회의 결실을 전혀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정보화 사회에 걸맞는 새 민주주의가 나왔다.
이름하여 “유동 민주주의(Liquid Democracy)”다. (Liquid Democracy: True Democracy for the 21st Century)
유동민주주의는 이제까지 고안된 민주주의에서 가장 민주적이다.
민주주의가 구성원의 뜻에 따라 정부를 조직하는 것이라면 가장 국민의 뜻을 따르도록 고안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최근에 경험했듯이 민의라는 것이 4년간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오늘과 같은 급변하는 세상에서는 4년간 고정될 수 없는 것이다. 기술혁신이 그렇고 세계정세가 그렇고 그런 것들이 우리 사회와 생활에 곧바로 영향을 주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지수함수적으로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4년동안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짓을 하는 한 인간에게 민의를 대변시킬 수 없게 된 것이다.
유동민주주의에서는 국회가 투표하는 안건을 직접 투표할 수 있다. 만약에 투표권을 행사하기엔 너무 세상물정을 모르는 사람은 손자와 손녀에게 투표권을 위임할 수 있다. 굳이 투표장에 나가서 손자가 가르치는 대로 2 번을 찍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손자는 할머니에게서 위임받은 한표를 합쳐 2표를 의결법안에 직접 투표할 수 있다. 의안이 복잡해서 자신도 어떻게 투표해야 할 지 모르는 경우에 그 의안에 가장 정통한 전문가에 2표를 위임할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그 전문가도 자신보다는 가장 합리적인 해법을 제시한 의안에 찬동한 한 그룹에게 모든 표를 몰아서 그 선봉장에게 위임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 기간 동안 가장 신뢰할 만한 사람에게 투표권을 위임할 수 있고 지금과 같이 투표나 선거를 잊고 지낼 수 있다.
그러나 신뢰했던 피위임자가 자기의 뜻과 다른 투표행태를 보이면 4년 기다릴 필요 없이 즉각 위임을 해지하고 가장 자기 뜻에 맞는 피위임자를 골라 자기의 표를 새로 위임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김성태의원 같이 한 때 갈보짓을 해서 국회의원이 되면 내가 누군데 감히 신분증을 보자 해? 하고 호통을 치며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고 항공기를 타는 갑질은 할 수 없게 된다. (갈보들의 한 시절)
그런 짓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 김성태의원을 대리인으로 위임한 유권자들은 모두 그를 해임하고 빠져 나갈 것이다. 김성태는 즉각 바람 빠진 풍선신세가 된다.
이런 유동 민주주의가 되려면 과거에는 그 기술이 따라갈 수 없었다. 그러나 Blockchain 을 쓰면 이 유동민주주의의 기술을 구현시킬 수 있다. (Liquid democracy uses blockchain to fix politics, and now you can vote for it)
유동민주주의는 하라는 일은 안하고 툭하면 장외에 나가서 농성이나 하며 국민의 세금만 축내는 국회의원을 몰아 낼 수 있다.
지수함수적으로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는 세상에서 유동 민주주의가 자리 잡을 날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지 모른다.
Liquid Democracy: True Democracy for the 21st Century
직접민주주의는 의안에 대해 유권자가 직접 투표한다.
헌법개정과 같은 중요한 의제가 아니면 번번히 모든 국회의 법률안에 찬판투표를 할 수가 없다.
간접민주주의(대의민주주의)는 4년에 한 번씩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그 국회의원이 모든 법률안에 찬반투표하게 위임한다.
21세기와 같이 테크놀로지 경제 사회가 지수함수적으로 발전하는데 4년에 걸친 기간을 한 사람에게 모든 의결권을 위임할 수 없다. 그 국회의원이라는 자가 4년안에 낡아서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또 하라는 일은 안하고 저의들 세력 키우고 권력을 계속 유지하는 방편에만 몰두하기도 한다.
유동 민주주의는 유권자의 민의가 유동적으로 정책결정에 반영된다.
자기가 모를 때엔 전문가에 위임하면 무지렁이도 자연스레 걸러진다.
유동 민주주의란 유권자의 의사가 집약 전달되는 구조가 물과 같이 흐른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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