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 '일상, 단상/잡문' 카테고리의 글 목록 (4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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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영국 여행 때 우연히 발견한 스텔라 아르투아에 반해서 지난 겨울 LA 와 Las Vegas 여행때에는 그 맥주만 사 마셨다.

 

난 맥주를 아주 좋아 한다.  값에 잔뜩 거품만 품고 한국에 상륙한 수입맥주는 하나 같이 내 입맛에 맞지 않는다.

 

미국에도 Microbrewery 가 유행한 다음엔 온갖 브랜드의 생맥주가 선을 보이고 또 Trade Joe 같은 곳엔 수입맥주가 수십종이씩 진열되어 있다.   이것 저것 맛을 시험해 봤지만 댕기는 것이 별로 없었다.   작년 LA  제자집에 초대받아기서 마신 맥주가 맛이 뛰어 났는데 다른 데서 찾지 못했고 지금은 이름도 잊었다.     또 찾았다 해도 그런 맥주는 항상 사 마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도 세계적으로 퍼진 맥주가 입맛에 맞으면 그게 낫다.    Stellar Artois 는 세계적 브랜드라 어디 가나 사 마실 수 있다.

 

그런데 생맥주로는딱 한번 지난 여행때 Las Vegas 의 New York NY 호텔의 Zumanity 극장 가까이에 있는 맥주바에서 마셔 본 일이 있다.  http://boris-satsol.tistory.com/1118

 

서울에도 대형 마트에 상륙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검색해 보니 Costco 에서 팔고 있었다.   거긴 너무 차가 많아 피하고 싶은 마트이지만  마침 아내도 거기서 살 것이 있다고 하기에 겸사겸사 갔다.

 

캔이 아니고 330 ml 병으로 팔고 있었다.     

 

내 입맛엔 우리나라 맥주도 괜찮기 때문에 그 맥주만을 사기 위해 주차하기 나쁜 그 곳에까지 다시 갈 생각은 없다.    

 

잘 찾아 보면 다른 마트에도 있을 지 모른다.   

 

 

 

 

우리나라도 이젠 대단한 사치 선진국에 되었다.

맥주까지 수입해다 마시니..

 

 

 

330 ml

5.0 % ABV 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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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3.28 16:35

    이마트나 롯데마트 주류코너에 스텔라아르투아 캔이 판매중입니다. 가격은 500ml 가 3,300 ~ 3,500원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근처 마트에 가서 찾아보세요.

  2.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3.28 16:47 신고

    감사합니다. 코스트코가 싸긴 싸군요. 그래서 사람이 많이 모이나 봅니다.

  3.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3.29 09:48

    저는 마셔보지 않은 맥주인데 선생님이 칭찬하는 맥주이니 마트에 있으면 한번 사서 마셔봐야겟습니다. ㅋ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4.03.29 10:55 신고

      전 국산 맥주(주로 카스 마십니다)도 좋아하기 때문에 집에서는 늘 국산맥주 마시는데 수입맥주로는 이 맥주를 좋아합니다. 5% 면 드라이 편인데도 전혀 그런 (harsh, 쎈) 느낌이 없습니다. 전에 카스에서 5% 넘는 드라이를 출시한 일이 있는데 맛이 영 틀렸었습니다. 단종되었는지 요샌 보이지 않더군요. 아내도 Stellar Artois를 좋아합니다.

  4.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3.29 11:06 신고

    집에서 가까운 롯데 백화점 슈퍼엔 없고 조금 떨어진 롯데 슈퍼라는 롯데 마트계열이 있는데 거긴 전화를 걸어 물어 보니 판매한다고 합니다. 걸어가는 거리인 이마트에 가보니 팔고 있었습니다. 500cc 캔이 3700 원이니까 330CC 한 병 값 2000원(코스트코)보다 비싼 편입니다.

  5. 혼의 자유인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3.29 12:55

    술을 거의 마시지는 않는편이지만 한번 사서 마셔봐야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

돌침대 유레일패스 초여름 날씨 서울의 매화

 

오늘은 아침부터 바쁘게 일을 많이 치뤘다.

 

아침 일찍이 늘 다니는 감남 경희한방 병원에 갔었다.     돌아와서는 쓰던 침대를 버릴 준비를 했고 마침내 돌침대가 도착했다.  

 

오후엔 치과에서 가서 임플란트 수술 자리의 실밥을 뽑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기에 기분이 좋아서 저녁엔 오랜 만에 맥주를 마셨다.      조만간 다시 국토 종주길을 이어 달려야지 하는 희망에 부풀었다.

 

종로 청진동에 가서 유레일패스를 샀다.   이번 여름 암스테르담 여행용이다.  

 

어제 우연히 유레일에 대해 다시 연구하려고 사이트를 방문했더니 3월말까지 이벤트가 있었다.    한달짜리 연속패스를 사면 거기에 5일을 무료로 더해 준다는 것이다.  한국 대행점에서는 금요일까지 구입해야만 한다기에 청진동에 가서 패스를 구입했다.     작년에 브리트레일을 샀던 곳이다.

 

종각바로 옆의 <두르가>라는 인도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다.   인도밥에 야채카레나 시금치 카레는 어금니가 없는 나 같은 사람이 먹기 좋은 음식이다.  <난>도 좋아 하지만 어금니없이 씹기 힘들어 주문하지 않았다.

 

치과 수술 후 처음 맥주를 마섰다.

 

 전철을 타고 올 것을 버스를 탔더니 만원이었다.  

 

오늘 날씨는 오후엔 완전히 초여름 날씨였다.   청진동 뒷골목의 한 매화나무엔 꽃이 만개했다.  처음엔 백목련이려니 했는데 가까이 가 보니 매화같았다.

 

그 옆의 자목련은 꽃봉우리 상태였다.  며칠 후면 만개할 것 같다. 

 

종로는 늘 향수를 자아낸다.   옛날은 거기가 서울이었다.

 

 

 

 

 

오늘 아침까지 잤던 침대는 버리고

오늘 저녁부터는 이 침대에서 자게 되었다.

 

 

 

 청진동 골목에 핀 매화꽃

어느 틈에 봄은 와 버렸다.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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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3.27 21:23

    종로에 다녀오셨군요. 제 세대에도 종로는 향수를 느끼게 하는 곳입니다.
    청진동에 핀 매화꽃. 멋있습니다.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4.03.28 15:47 신고

      감남이 개발되기 전까지에는 서울은 종로가 중심지였지요. 압구정동이 배밭이고 개포동이 논밭이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2. 혼의 자유인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3.29 12:50

    많이 호전되셨나봐요~~~ 새로운 침대에서 좋은 꿈 많이 꾸세요!!!^&^

내 끈질김 - 14년전 (2000년)의 유럽여행기

 

 

오늘 내가 성취한 것은 내가 그렇게 애타게 찾던 내 사진들을 내 블로그에서 찾은 것이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잘 안 갈 것이다.

 

차근 차근 이야기 하겠다.

 

내가 정년퇴직하던 해인 2000년(2001년 2월 28일이 공식적인 마지막 날이다.)에 유럽여행을 갔었다.    내 물리학의 삶의 공식적인 마감을 하는 해이니 물리학의 발상지인 유럽을 순례한다고 생각한 여행이었다.   

 

블로깅이란 것이 세상에 나오기 전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 지금 블로그 포스팅과 같은 여행기를 써서 올렸던 것이다.    그러니까 블로그 이전의 첫 블로그 포스팅이었고 내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여행기였기 때문에 애타게 찾던 것이다.

 

내 전공이 통계물리학이니 그 시조라 할 수 있는 Boltzmann 의 무덤을 찾아 가는 것이 순례길에서도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하나넷에 가입한 덕에 천리안에 공간을 얻어 홈페이지를 만들고 여행기를 써서 올렸었다.       그런데 하나넷에서 현재의 C&M 케이블로 옮기면서 천리안의 디스크 공간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때 그 곳에서 백업을 받아 두었다고 생각했던 그 유럽 여행기가 깜쪽같이 없어 진 것이다.    따라서 거기에 올렸던 사진도 사라졌다.    내 백업 CD 를 뒤지고 뒤져도 그 사진들은 나오지 않았다.  

 

인터넷도 뒤지고 뒤졌다.   혹시나 Boltmann 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퍼 갔을 수도 있지 않나 해서였다.    문서로는 나오지 않았다. 사진이 없는 Text 만 있는 내 블로그로 유도 될 뿐이었다.   

 

오늘 허설쑤로 Google 이미지 검색을 해 봤다.    수백개의 사진이 나온 뒤에 이것 봐라 내가 찾던 사진이 나오지 않는가!   

 

이런 걸 Lo and Behlod 라고 감탄사를 붙인다.   내가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도둑 맞고 두번째로 산 Kodak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유럽여행을 떠났었다.   와  순례여행 첫 기착지인 몬테칼로 맥주집에서 찍은 사진이 아닌가!  

 

그런데 사진의 페이지가 내 블로그다?      내가 Tistory에 블로그를 개설하면서 두개의 블로그를 만들었다.   하나는 네이버에서 옮겨 온 것을 바탕으로 지금 쓰는 블로그이고 하나는 내 플래시의 첫 착품 주사위의 해설을 쓰기 위해서 만든 영문 이름 "From the Planet Earth" 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2010 년경 부터 Paran 이란 포털에서 동시 발행을 해 준다해서 거기를 메인으로 블로깅을 했었다.   몇년전에 Paran 이 문을 닫는다고 하여 백업을 받아 두라고 해서 Tistory 에 파란 블로그의 백업을 받아 두었다.    그 때  블로그 하나를 더 만들어 파란의 블로그 이름이었던 "Things Old and New"  라는 이름으로 Paran 의 포스팅을 다 옮겨 왔었다.    

 

파란의 블로그 내용은 모두  이 블로그 "지구별에서' 에 동시 발행되었으나 파란이 사라질 때 Text 는 남아 있지만 사진은 다 사라졌다.   그래서 이 2000년도 여행기는 텍스트만 남고 사진이 없는 살이 없는 해골로 남아 있었다.    어제 다시 살을 붙여 살려 놨다.

 

파란에서 옮겨 온 "Things Old and New" 를 지금 다시 들여다 보니 2010 년 3월 10 일에서 2011년 6월 17일까지  150 개의 포스팅을 "파란" 에서 동시 발행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 121 번째 포스팅에 유럽여행기가 끼어 있었던 것이다.

 

2010년에서 2011 사이에 2000년 여행기가 끼어 있다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그것이 아마 천리안을 닫을 때 백업하는 과정에서 파란에 그 여행기만을 포스트 형식으로 옮겼던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 해도 지금도 전혀 기억에 남지 않는다.  다만 추정할 뿐이다.   그런데 거기 머릿말이 있었다.   그 추정이 맞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으니 그 옮겨 온 파란의 블로그를 뒤져 볼 생각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Google 에서 "이구철 유럽여행기" 를 찍어 넣고 이미지 검색을 했다.

수백개의 사진이 나온 뒤에

내가 애타게 찾던 사진이 나오지 않는가!   

그런데 그 사진의 저장소가 내 블로그였다.

 

 

 

 

"파란" 블로그에 포스팅 했던 글 150 개 중에서 

121 번째 포스트가 10년전 유럽여행기였다.

이 때 아마도 천리안을 닫을 때 였던 것 같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건이다.

Google 의 위대함에 다시 한번 감탄한다.

 

 

 

10년전의 유럽여행 - 볼쯔만 묘비 찾아 가는 길

http://dcknsk.tistory.com/121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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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3.06 09:57

    무척 반가우셨겠습니다. 저도 덕분에 유럽여행기와 14년전 젊은(?) 선생님 모습을 볼수 있어서 반가웠습니다.ㅋ

  2.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3.06 10:17 신고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읽어 보니 거기에 옮겨 오게 된 연유가 적혀 있네요. 까맣게 잊고 그 엄청난 시간을 집에 있는 백업 CD 란 CD 는 다 열어 보고 뒤지고 인터넷 검색도 엄청했었네요.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 롯데 카드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  잠시후 다시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무른모에 그런 메시지를 보내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사람이 보낸 메시지는 아니다.    

 

귀국하여 제일 먼저 한 일은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롯데카드를 갱신한 것이다.   미국체류중에 대형 정보 유출사고가 불거져 나왔고 본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카드번호 갱신을 외국에서 할 수 없어 안타까웠지만 별 수 없었다. 

 

그래서 오자 마자 롯데백화점 카드창구에 가서 쓰던 카드를 폐기하고 새 카드를 신청하고 나왔다.    문제는 그 후에 발생했다.     폐기한 카드번호로 자동결제하게 만든 것이 올 스톱한 것이다.

 

가장 치명적인것이  토요일 저녁인지 일요일에 코니의 휴대폰의 잔액이 천원정도 밖에 남지 않았는데 자동 충전이 되지 않았다.   올레의 자동 충전 설정에 롯데 카드를 주었던 생각이 났다.   폐기한 카드 번호가 입력되었을 터이니   올레 자동 충전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휴대폰을 쓰지 않고 기라렸다 대리점이 열면 가서 카드 번호를 바꿔 주며 된다.   그러나 대리점에 가는 것보다 내가 인터넷으로 충전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전에 경험한 일이 있다.    여행전 어느 토요일 오후에 대리점에 가서 내 아이폰5에 데이터 충전을 요청했는데 대리점에서는 전상망이 토요일 오후는 닫혀 있어 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듣고 집에 돌아 온 일이 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올레 홈페이지에 들어가 예저기를 쑤시고 다녔더니 내가 직접 충전할 수 있었다.      참으로 어이 없고 웃기는 일이다.     대리점 전용의 전상망은 꺼놓고 올레 홈피에서 직접 내가 하면 충전을 할 수 있다니..

 

그래서 코니의 카드번호 변경도 내가 하면 할 수 있으려니 하고 홈피에 들어가 예저기 쑤시고 다니면서 길을 찾아 냈다.      그 과정에서 느낀 것은 올레 홈피가 정말 형편 없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어떻게 찾은 길인지 내 카드번호도 바꾸려고 들어 가는데 또 미로를 헤맸다.   적어도 뭔가 고객이 직관적으로 일을 처리하게 만들어야지 기존 가입고객은 완전히 무시하고 신규 고객 신청으로만 유도하게 만들어 놨다. 

 

일단 고객이 된 사람은 그냥 무시하고 새 고객을 부르는 호객행위만 하는 홈피였다.

 

그래도 올레는 그만하면 나 혼자 일을 해결했다.   밤이니 어차피 고객센터에 전화를 넣어 문의할 수 있는 시간도 아니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우리가 잘 쇼핑을 하는 G 마켓이었다.  간편 결제를 하는 신용카드로 롯데카드를 입력시켜 놓은 것이다.       물건을 사려고 주문을 하고 간편결제를 하려는데 가드사에서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하다.   롯데카를 입력시켜 놨는데 그 카드가 폐기되었으니   당근.      그런데 이건 어찌 된 일인지 카드 번호를 바꾸는 방법이 없다.

 

포기하고 오늘 일찍 전화를 넣어 문의했다.    내가 다 해 본 방법을 가르쳐 주려고 한다.    "그거 다 해 봤는데요"  대답이 궁해지자 알아 보고 전화를 해 주겠단다.

 

마침내 대답이 왔다.     G 마켓에서는 카드 번호 바꾸는 방법은 없고 롯데 카드사에 문의 하라고 한다.      그래서 롯데 카드사에 전화를 넣었다.   먼저 걸려온 전화부터 순서대로 상담원을 연결해 주겠단다.     몇번 시도 끝에 그 방법을 배웠다.  오직 롯데 홈피에 공인인증으로 로그인 해서 들어가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롯데 홈피의 방법도 연달아 실패했다.    번호를 입력하고 전화번호 주민번호 비밀번호 CVC 번호를 다 입력하고  휴대전화로 받은 인증번호를 입력해서 마지막 클릭을 하면 이미 사용중인 번호라고 한다.

 

등록여부를 확인하라고 한다.  등록여부를 확인하면 등록 내용이 없다고 나온다.   이렇게 여러번을 왔다 갔다 하다가 다시 전호를 넣었더니   한참을 확인을 하고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치고 어쪄고 하다가는 마침내 자기네가 강제 탈퇴를 시키고(아마도 엉킨 세팅을 리셋 해주겠다는 것 같았다.) 문자로 통지 해 주겠단다.

 

10여분만에 문자가 왔다.  강죄 탈퇴조치가 완료되었단다.

 

다시 카드 번호 입력을 하니 이번에는 수월하게 마지막 단계까지 올 수 있었다.   등록완료 버튼을 누르니 아 이게 뭔가!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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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3.05 12:58

    ㅋㅋ 선생님의 잘못(?)은 여러가지 시스템 수준보다 상위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런 경우를 종종 겪어서... 상담원과 얘기할때는 '다 해보고 전화하는 것이니 ABC는 빼고..잘 아는 상담원 연결하시고..' 등 전제를 깝니다.
    마지막 부분.. 속 터지고 안타깝지만.. 그냥 웃으십시요..ㅎ
    (제가 이런 류의 상담시 가끔 그들은 주민번호를 보고 제 컴 수준을 가늠하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 상담시는.. 많이 놀랄 것 같습니다. ㅋ)

  2.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3.05 16:15 신고

    감사합니다. 최종 과정은 에러가 났지만 등록은 된 것 같습니다.

나이와 더불어 감퇴하는 기억력에 대하여 - 교류기억과 외장 두뇌

 

은퇴하기전 5년이나 10년전 이야기이니 내 나이가 60 안팍일 이었을 때일 것이다.    정말 당혹스런 일이었다.   내가 포항공대 콜로퀴엄연사로 초청받아 포항행 항공기를 타려고 김포공항에 갔을 때 화학과의 후배교수 L을 만났다.    화학과와 물리학과는 가까이 있어 교내에 자주 부딛치고 또 자연대 테니스 클럽 멤버들이라 테니스도 같이 치곤 했던 사이다.   그런데 그 L교수의 이름이 떠 오르지 않는다.     우물 우물 인사를 하고 포항행 항공기 안에서 이름을 기억해 내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연구실에 있었다면 교수 수첩을 보거니 전화번호부를  본다든가 해서 생각해 내기 쉬었을 것이다.   

 

난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해 당황할 때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가, 강, 고, 공, 등 가나다라를 다 외우다 보면 찰칵하고 메모리를 trigger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항공기에서 그 방법을 썼으나 아무 trigger 가 없었다.

 

포항 공항에는 포항대학에서 마중나온 화학과 교수와 물리학과 교수가 있었다.  우린 서로 상대방 교수들에게 엇길로 인사를 시켜 줘야 하는 상황이 었다.   내 이름을 잘 기억하는 L 교수가 포항대학 화학과 교수에게 날 소개했다.  이제 내가 포항대학 물리학과 교수에게 L 교수를 소개해 줄 차례다.

 

 

우리 대학 화학과 L 아무개 교수입니다 해야 하는데 L 아무개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이쪽은 우리 대학 화학과 ... 하고 더듬고 있는데 L 교수가 먼저 선듯  S 대학 L 교수입니다라고 자기 소개를 했다.

 

 

별것도 아닌데도 그 때 기억이 오래 오래 남아 았다.   그 때 그 네사람 누구도 이런 해프닝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나만 당혹했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문에 그 L 교수 이름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기억력이 더 감퇴한 것 같다.  뇌도 다른 기능과 같이 피크를 지나 기능이 감퇴한다.   그건 느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력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려면 다른 방편을 써야 한다.    

 

다행한 것은 인지능력중에서 기억력은 쇄퇴하지만 추리분석능력은 심한 감퇴를 느끼지 않고 있다.   물론 내가 물리학에서 손 뗀지가 7~8년 되어서 옛날 내 능력이 어느정도 감퇴되었는지 가늠할 방법이 없지만  

 

나이와 더불어 감퇴한 기억력을 어떻게 보충하나?  어떻게 잊었던 것을 기억해 낼 수 있나?     지난 포스팅에서 이야기한 뇌과학의 성과는 얼마 안된 장래에 뇌에 와이파이를 직접 연결할 방법이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 가장 희망적인 방편이다.    와이파이는 무진장의 기억과 직결되어 있다.   마이크로칩을 내 두뇌에 임플란트할 수만 있다면이야  내 모자라는 기억력을 보충할 뿐 아니라 몇10년전의 기억력보다 더 효과적이 정보를 저장하고 불러낼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도 비록 내 뇌에 임플란트되어 있지 않아도 손쉽게 잡을 수 있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는 임프란트된 마이크로 칩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며칠전 선바위에 사는 젊은 내외의 초대로 선바위근방의 스페인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야기를 하다가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골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내가 그가 저술한 책으로 잘못 기억하고 있던 세계 사대성인의 철학해설책 이야기를 했다.  전에 읽었는데 감명을 받았던 책이다.   물론 종이책이기 때문에 옛날에 처분해 버려 이젠 다시 읽을 려 해도 읽을 수 없다. 

 

이런 오랜 책은 대개 저작권이 소멸되어 전자책으로 무료 다운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검색해도 그 책이 나와 있지 않다.     내가 저자를 잘못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키엘케골이 아니라 칼 야스퍼스(Karl Jaspers)가 쓴 책이 었다.   두 사람 다 실존주의 철학의 원조급에 속하기 때문에 내가 두사람을 혼돈한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격국 책도 찾아 내고 바른 저자도 알아 낸 것이다.

 

 

 

아마존에서 종이책만 팔고 있었다.

 

 

이 책을 검색하다 대학생시절에 읽었던 "철학개론" 생각이 났다.  실존주의 철학 이야기는 이 책에서 읽었다.   당시 문리대에 재직했던 박종홍교수가 쓴 책이다.    책이 귀하던 시절 대학생이면 다 읽었을 법한 명저였다.   단지 그분의 강의는 한 두번 밖에 듣지 못했다.   문리대의 원로교수는 한 학기에 한 두번 밖에 강의실에 나타나지 않을 때였다.

 

그러다 또 한분의 철학교수생각에 났다.   "고"교수인데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나중에 총리도 지내고 서울시장도 지낸 <고건>씨가 그 철학교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고건>씨를 검색해서 그 철학교수이름이 <고형곤>씨란 것을 기억해 냈다.

 

인터넷은 내 <교류기억(transactive memory)> 매체다.    요즘은  떠 오르지 않는  기억을 찾아내는데 항상 옆에 끼고 사는 아아패드가 도와 준다.    google이나 Amazon은 부정확한 기억통로도  기가 막힐 만큼 잘 추측하여 검색결과를 일려 준다.    

 

Google 에서 검색할 때 spelling 이 틀리거나 아예 낱말 자체가 틀려도 비슷하게 내 의도를 알어 검색해 준다.  그래서 잊어버린 이름도 <가강거고공>따위의 "가나다라.."를 외우지 않아도 된다.

 

인터넷 이전에도 비슷한 "교류기억" 매체가 있었다.   영어 낱말이 생각이 안 날 때엔 Thesarus 가 큰 힘이 되어 주었고 지식은 브리타니카 백과사전,  사람은 인물사전, 인명사전, 사적인 매체로는 전화번호부,  교직원 수첩,  동창회 명부등등이 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종이책은 그 자체가 가까이 있지 않으면 쓸모가 없고 그 정보내용도 한계가 있다.  인터넷도 아이패드가 나오기전 PC는 켜 있지 않으면 부팅하는데 시간이 걸려 그걸 켜고 뭘 할 생각은 별로 나지 않았다.  물론 인터넷이 연결되기 전까지는 교류기억의 역할은 할 수 없었다. 

 

인터넷과 연결된 휴대전화나 아이패드가 거의 두뇌에 임플란트된 마이크로 칩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내 블로그에 뭔가 해서 알아낸 것을 자세히 적는 것은 훗날 같은 문제에 부닥치면 참조하기 위함이다.     어제 우연히 아내가 배우는 음악렛슨에서 모짜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K622 2악장의 일부의 악보를 보았다.  익숙한 곡인데 링톤으로 적당해 보였다.    전에 링톤을 어떻게 만들어 아이폰에 올리는가를 쓴 일이 있다.  그 사실만은 기억하지 어떻게 했는가는 자세한 기억이 없다.  iTune을 이용했다는 정도의 기억 뿐이다.  그래서 거기에 들어가 레시피를 보고 링톤을 만들어 아이폰에 집어 넣었다.    내가 블로그에 쓰지 않았다면 다시 다른 소스로 찾아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러니까 내 블로그도 내 기억 저장매체중의 하나다.   

 

 


Mozart  K622 일부 링톤 mp3

아이폰용 링톤

RingToneK.622.m4r

 


 

그런 의미에서 휴대폰은 외장 두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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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3.12.10 10:04

    외장두뇌. 저도 늘 폰을 갖고다니면서 기록도 하고 궁금한 것은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클라우드에서 꺼내고 저장하고 하면서 그렇게 생각합니다.

    •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3.12.10 17:02 신고

      아이패드와 와이파이 인터넷이 없었다면 어떻게 어떻게 살았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수첩이나 뭐 다른 방법을 썼겠지요. 아무틀 좋은 세상인것 틀림 없습니다.

와이파이 없는 세상을 체험하련다.

 

대전 여행을 마치고 귀가한 사흩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니 등짝이 아프다.  오른쪽 견갑골 아래 부위가 뻐적지근한게 움직이면 아프다.    잠을 잔 자세가 나뻐서 그런가 하고 안마의자에 앉아 등짝만 안마를 했다.  그것도 여러번 안마를 받았다.  받을 땐 시원하지만 쉽게 가시지 않는다.   삼일째도 별로 차도가 없어 오늘 늘 다니는 한방병원에 가서 침을 맞았다.  내주 월요일엔 모임이 있고 수요일엔 치과에 점검을 가야 한다.  그래서 수요일 치과 점검을 미치고 속초행을 계확했다.   그 동안에 배(등)통이 낫기를 바라고 속초행을 결심했다.

 

사진을 보니까 속초엔 2007년  4월 말경에 자전거 여행을 간 것 갔다.    4월 27일에 가서 4월 30일 돌아 온 것으로 되어 있다.  내 블로그는 일종의 메모리 리프레셔다.  ( 2007/05/01 - 속초 여행 )


 

그러니까 6년만에 다시 가 본다.   그 때 묵었던 영랑호 타워 콘도를 알아 보니 제일 작은 형(18평)은 우리가 가려는 기간중에 하루가 만실이라 20평으로 16일 부터 5박을 예약했다.    영랑호 타워 콘도는 작은 평수형이 있다는 것 이외에도 영랑호 자전거길과 이어져 있어 자전거 타고 다니기가 쉽다는 잇점이 있다.

 

그런데 객실에 인터넷이 되는지를 알아 보지 않았다.  예약을 다 하고 나서 물어 보니 유무선 유무료 모두 안된다는 것이다.    로비에 있는 PC 한대만 인터넷이 된단다.

 

그래서 대체 방법을 알아 봤다.    영국에서 썼던 이동 와이파이가 가능한가 알아 보았다.  KT 와이브로가 속초 영랑호 콘도를 커버한다는 것은 확인했다.   그런데 한국에는 선불제라는 것이 없다.    유일한 대안은 단기 방문하는 외국인을 위한 렌탈 서비스가 있었다.    보증금 10만원에 하루 8000원이란다.   매우 합리적인 가격이다.  그런데 그것은 인천공항에서 여권을 제시해야 가능하단다.   내국인도 되는지 안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인천공항이 유일한 렌털 장소이이니  6일간 빌리자고 인천공항에 두번이나 갔다 올 순 없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인터넷 없이 5박 6일 지내 보기로 했다.   iPad 에 와이파이를 꺼넣고 무엇을 오프라인으로 한 수 있는가를 테스트 중이다.  Kindle 책은 다운 받아 놓으면 읽을 수 있다.    잠 청하기 위해 즐겨하는 게임 몇개는 된다.  자전거 길은 미리 GPX 파일을 만들어 놓으면 된다.    계획을 미리 다 세워 놓으면 된다.

 

2007년 여행기를 보니 사진은 사진에 찍힌 날짜가 나오지만 일기는 서울에서 돌아 와서 쓴 것 같다.  인터넷 안되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땐 아이폰도 아이패드도 없을 때 였다.

 

우리가 과연 와이파이에 중독되어 살고 있는지 와이파이 안되는 곳에서 6일을 지내보자.    중독되었다면  어떤 금단현상이 오는지 어떤지 그것도 새 경험이다. 

 

 

 

 

2007 속초여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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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illez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3.10.12 08:22

    ㅎㅎ 쉽지 않으실 듯. 잠깐 핸드폰 테더링 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2.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3.10.12 10:04 신고

    감사합니다. 제 아이폰엔 3G data 100MB 30 Days 5500원 선불 충전해 갑니다. 그런데 3G 는 터진다 해도 인터넷 서핑은 거의 안됩니다. 네이버 지도 보는 정도입니다. 시골에서 자전거를 탈 땐 그게 중요할 때가 많더군요. MotionX는 한국 지도가 허술해서.

  3. Satsol 샛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3.10.16 18:45 신고

    Wifi 없는 세상 살기도 쉽지 않네요. 우리가 14층 방을 쓰는데 14Left 라는 wifi 가 뜨네요. 14th floor 에
    Left wing 과 Right wing 에 공유기가 하나씩은 있다는 이야기 같네요. 우리방 어딘가에 공유기가 감춰져 있는 거 아닌가 의심이 갈 만큼 신호가 쎕니다.

윤창중의 세쿠하라

 

오늘 우연히 NHK 6시(오후) 뉴스를 보니까 윤창중의 세쿠하라 뉴스가 나왔다.  

 

세쿠하라(セクハラ) 라는 낱말은 20 여년전 미국에서 우연히 보게 된 일본어 신문에서 처음 마주쳤다. 카타카나로 쓴 <セクハラ>는 틀림 없이 외래어인데 (일본사람은 외래어를 카타카나로 쓴다) 비슷한 소리의 영어를 떠 올려봐도 생각 나는 낱말이 없다.   인터넷이 오늘 날처럼 발전했었더라면 인터넷 검색을 해서 알았을 것이다.  그 땐 아직 인터넷이 없을 때였다.

 

그 신문기사의 문맥과 내 뇌를 쥐가 나도록 쥐어짜서 마침내 무릅을 탁 쳤다.

 

그것은 Sexual Harassment 의 sex 와 hara 를 따다 합친 합성어였던 것이다.  우리말로는 성희롱에 해당되는 낱말이었다.

 

그 낱말이 오늘 NHK 오후 6시뉴스에서 다시 본 것이다.

 

물론 윤창중 본인은 성적인 의도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법에는 명백히

 

세쿠하라는 피의자의 의사( 성적의도가 없다는 의사)와 관계없이 피해자가 어떻게 느꼈는냐에 따라 피해의 정당성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쌍방이 술에 취했던 아니던 관계없이.

 

The validity of a complaint is based on how the recipients felt and not on the intent of the accused, or on whether or not either party was intoxicated at the time.

 

궁뎅이를 툭툭 첬건 허리를 툭툭 쳤건 관계가 없다.   성적 의도가 없었다 해도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면 그건 성희롱의 요건을 충족 시킨다고 한다.

 

 그러니까 궁둥이던 허리던 남의 몸을 함부로 쳐서는 안되는 것이다.

 

 

 

NHK 에 방영된 윤창중의 세쿠하라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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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키미 하루키 - 영혼이 오가는 길을 막지 말라

 

 

며칠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감는 새의 연대기>를 끝냈다.   꽤 긴 소설이었지만 독파했다.    내가 무라카미를 읽게 된 계기는 지난 여름 홋카이도 여행때 불거져 나왔던 독도와 센카쿠열도를 둘러 싼 한중일 영토 분쟁이 한 창일때 그가 아사히신문에 기고한 에세이를 읽고 나서였다.

 

종이책과 결별한 뒤라 웬만해서는 종이책으로 책을 읽지 않기 때문에 전자책으로 나온 무라카미의 이 소설은 영역본이 유일한 것이었다.     그래서 미국 아마존 Kindle 서점에서 구입하여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무라카미의 소설은 이름만 들었을 뿐 읽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한중일 영토분쟁이 불거져 정치인이니 논객이니 하는 이들이 국민들을 부추겨 난리를 치는 꼴을 보고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을 때인데 그의 에세이를 읽게 되었다.

 

무라키미씨가 아사히신문에 기고한  에세이는 내가 한국의 정치인나 논객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해 주었다.  내가 올린 몇개의 글에서도 중복된 이야기가 나온다.  ( 2012/08/17 - [해외여행기/일본 홋카이도] - good to be home

2012/08/16 - [해외여행기/일본 홋카이도] - 우리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2012/08/18 - [일상, 단상/지나간 세상] - Passport 가 없는 세상을 꿈꾸며

2012/08/20 - [일상, 단상/지나간 세상] - 은원을 넘어서야 - 우린 아직 고작 숫캐의 수준인가 )

 

 

<태엽감는 새의 연대기>는 Nomonhan 전쟁을 다룬 소설은 아니다.  그 이야기가 그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입을 통해  상당부분 나오는 것 뿐이다.    그 것은 태평양전쟁의 전초전이었고  난 그 전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당사자였다.      한 줌의 인간들이 항상 이런 사건을 일으키고 결국은 그런 사람과는 관계 없는 나 같은 어린이가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일본의 <아베>나 한국의 <MB>나 똑 같은 사람들이다.  이런 인간들이 정권을 잡으려고 인기를 높이려고 국민을 선동해서 소리 지르고 흥분하게 자극하는 것이다.  

 

여기 무라카미씨의 에세이를 구글로 번역해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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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63)씨는 동아시아의 영토를 둘러싼 문제에 대해 문화 교류에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하는 에세이를 아사히 신문에 보냈다. 무라카미 씨는 "국경을 넘어 영혼이 오가는 길"을 막아서는 안된다고 쓰고있다.

일본 정부의 센카쿠 열도 국유화에서 일 - 중 대립이 심화하는 가운데 베이징시 출판 당국은 지난 17 일 일본인 작가의 작품 등 일본 관계 도서 출판에 대해 구두로 규제를 지시. 베이징 시내 대형 서점에서 일본 관계 서적이 매장에서 사라지는 사태가 생기게 되었다.

에세이는 먼저 이 보도에 접하고 충격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20년간 동아시아의 문화 교류는 풍부 해지고 있다. 그러한 문화권의 성숙이 센카쿠와 다케시마를 둘러싼 한중일의 알력으로 파괴되어 버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무라카미씨는 중국, 한국, 대만에서도  그의 작품을 통해 인기가 높으며  동아시아 문화권의 꾸준한 교류의 일익을 담당해 온 당사자 중 한 사람이다.  중국과 대만에서 작품은 거의 모두가 번역되어, 중국어 간체 및 번체, 두 버전이 출판되었다.     특히 "노르웨이의 숲"의 인기가 높고, 중국에서는 "절대 무라카미 (확실 무라카미)", 대만에서 "매우 무라카미 (대단히 무라카미)"라는 유행어가 탄생했을 정도 다. 한국에서도 거의 전 작품이 번역,   대학생을 중심으로 인기가 높다.  그로인해 동아시아 내에있는 신진 작가에 널리 영향을주고있다. (무라카미 씨의 기고 에세이 전문은 아래)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분쟁이 과열되는 가운데, 중국의 많은 서점에서 일본인 저자의 책이 사라졌다는 보도를 접하고, 한 사람의 일본인 저자로 적지 않은 충격을 느끼고 있다.  그것이 정부 주도에 의한 조직적인 배척인지 또는 서점 측의 자발적인인 결정인지, 자세한 내용은 아직 모른다. 그래서 그 시비에 대해 의견을 말하는 것은 지금 단계에서는 보류 싶다.

이 이십년 만의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기쁜 성취 중 하나는 거기에 고유의 "문화권"이 형성되어 온 것이다. 그런 상황이 초래 된 큰 원인으로, 중국이나 한국이나 대만의 눈부신 경제 발전을 들 수있을 것이다. 각국의 경제 시스템이 더 강하게 확립 됨으로써 문화의 등가 교환이 가능하게되어, 많은 문화적인 성과 (지적 재산권)이 국경을 넘어 오가게 되었다. 일반적인 규칙이 정해져 한때이 지역에서 기승을 부렸다 해적판도 점차 사라거나 (또는 수가 크게 줄어 들거나), 전도금이나 인세도 점차 정당하게 지불되어 가고 있다.

나 자신의 경험에 근거 해 보면, "여기에 오기까지의 여정은 길었구나"라는 것이된다.  이전 상황은 그만큼 열악했다. 얼마나 심했던 지, 여기에서는 구체적인 사실은 언급하지 않지만 (더 이상 문제를 얽히게 싶지 않으니까), 최근에는 환경이 크게 개선되고,이 '동아시아 문화권'은 풍부하고 안정된 시장으로 꾸준히 성숙을 이루고 있다.  아직 몇 가지 특정 문제는 남아 있지만, 그 시장에서 지금은 음악이나 문학이나 영화 나 TV 프로그램이 기본으로 자유롭게 등가 교환되고 많은 수의 사람들의 손에 닿고, 즐기게 되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성과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TV 드라마가 히트 한 것으로, 일본인은 한국의 문화에 대해 이전보다 훨씬 친근감을 갖게 됐고, 한국어를 학습하는 사람의 숫자도 급격히 늘었다.  그것으루 인해, 예를 들어 내가 미국의 대학에있을 때, 많은 한국인 · 중국인 유학생이 내 사무실을 방문 해준 것이다.  그들은 놀라운 열심히 내 책을 읽어주고, 우리 사이에는 많은 이야기를주고받는 일이 있었다.

이러한 바람직한 상황을 출현시키기 위해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이 심혈을 기울여왔다. 나도 한 명의 당사자로서 미력이지만 나름대로 노력을 계속 해왔고, 이러한 안정된 교류가 지속되면, 우리와 동아시아 이웃 나라 사이에 존재하는 몇 가지 사안도 시간은 걸릴 수도 있지만 점차 해결을 향해가는 틀림 없다고 기대를 안고 있었다. 문화의 교환은 "우리는 비록 말이 달라도 기본적으로 감정이나 감동을 공유하는 인간끼리 한다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 것을 하나의 중요한 목적으로하고 있다.  그것은 말하자면, 국경을 넘어 영혼이 오가는 길인라는 것이다.

이번 센카쿠 열도 문제, 혹은 다케시마 문제가 그런 충실한 달성을 크게 파괴하는 것을 한 명의 아시아 작가로, 또 한 사람의 일본인으로서 나는 두려워한다.

국경선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상, 불행히도 (라고 해야만 하는) 영토 문제는 피할 수없는 이슈이다. 그러나 실무적으로 해결 할 수있는 이슈 인 것이고, 또한 실무적으로 해결 할 수있는 이슈가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영토 문제가 실무 과제임을 넘어 '국민 감정'의 영역에 발을 들여 넣게 되면,  그것은 종종 출구없는 위험한 상황을 발생 시키게된다.  그것은  싸구려 술기운과 비슷하다.   싸구려 술은 몇 잔으로 사람을  취하게 하고 머리에 피를 올리게 한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그 행동은 난폭해진다. 논리는 단순하고 자기 반복된다. 그러나 술기운 가시고 날이 샌 뒤에 돌아 보면 뒤에 남는 것은 아니 두통 뿐이다.

그런 싼 술에 취한 행동, 소란을 피우는 주정뱅이 타입의 정치인과 논객에 대해 우리는주의 깊게 경계해야한마.   1930 년대에 아돌프 히틀러가 정권의 기초를 다졌던 것도 1 차 대전을 통해 잃어버린 영토 회복을 일관되게 그 정책의 근간에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 왔는지 우리는 알고있다. 이번 센카쿠 열도 문제에 있어서도 상황이 심각한 단계까지 추진 된 요인은 양쪽에서 나중에 냉정하게 검증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정치인과 논객은 위세 좋은 말을 늘어 사람들을 부추 기는 것만으로 끝난다.  그러나 실제로 상처는 현장에 처한 개별 인간이다.

나는 "태엽 감는 새 연대기"라는 소설 속에서, 1939 년에 만주국과 몽골 사이에서 일어난 <노몬한 전쟁>을 다룬 적이있다. 그것은 국경 분쟁이 빚어 낸, 짧지 만 치열한 전쟁이었다. 일본군과 몽골 (= 소련 군)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진행되며  양쪽모두 2만에 가까운 수의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 나는 소설을 쓴 후 ​​그 지역을 방문,  아직도 탄피와 유품이 흩어져 있는 망막한 황야의 한가운데에 서서 "왜 이런 아무것도  없는 메마른 조각의 땅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의미없이 죽이고 죽어야 했던가? " 라고 심한 무력감에 빠지고 되었었다.

처음에도 언급했듯이 중국의 서점에서 일본인 저자의 책이 제거된 것에 대해 나는 의견을 말할 입장은 아니다. 그것은 어디 까지나 국내 문제이다. 한 사람의 저자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할 수 없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분명히 말할 수있는 것은, 그런 중국 측의 행동에 대해 상응하는 보복 행동을 취하지 않는 주셨으면하는 것 뿐이다. 만약 그런 일을하면, 그것은 우리의 문제가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 올 것이다. 반대로 "우리는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해 비록 어떤 사정이 있어도 합당한 경의를 잃지 않는다"라는 조용한 자세를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소중한 달성이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싼 술기운의 정반대에 행동이 되는 것이다.

술기운은 언젠가 깨어 난다. 하지만 영혼이 오가는 길을 막아 버려서는 안된다.   그 길을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긴 세월을 걸쳐 피나는 노력을 거듭해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어떤 일이 있어도 계속 유지해 야 하는 소중한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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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 원문

作家の村上春樹さん(63)が、東アジアの領土をめぐる問題について、文化交流に影響を及ぼすことを憂慮するエッセーを朝日新聞に寄せた。村上さんは「国境を越えて魂が行き来する道筋」を塞いではならないと書いている。

 日本政府の尖閣諸島国有化で日-中の対立が深刻化する中、北京市出版当局は今月17日、日本人作家の作品など日本関係書籍の出版について口頭で規制を指示。北京市内の大手書店で、日本関係書籍が売り場から姿を消す事態になっていた。

 エッセーはまず、この報道に触れ、ショックを感じていると明かす。この20年ほどで、東アジアの文化交流は豊かになっている。そうした文化圏の成熟が、尖閣や竹島をめぐる日中韓のあつれきで破壊されてしまうことを恐れている。

 村上作品の人気は中国、韓国、台湾でも高く、東アジア文化圏の地道な交流を担ってきた当事者の一人。中国と台湾で作品はほぼ全てが訳されており、簡体字と繁体字、両方の版が出ている。特に「ノルウェイの森」の人気が高く、中国では「絶対村上(ばっちりムラカミ)」、台湾では「非常村上(すっごくムラカミ)」という流行語が生まれたほどだ。韓国でもほぼ全作品が翻訳され、大学生を中心に人気が高い。東アジア圏内の若手作家に、広く影響を与えている。(村上さんの寄稿エッセー全文は以下)

     ◇

 尖閣諸島を巡る紛争が過熱化する中、中国の多くの書店から日本人の著者の書籍が姿を消したという報道に接して、一人の日本人著者としてもちろん少なからぬショックを感じている。それが政府主導による組織的排斥なのか、あるいは書店サイドでの自主的な引き揚げなのか、詳細はまだわからない。だからその是非について意見を述べることは、今の段階では差し控えたいと思う。

 この二十年ばかりの、東アジア地域における最も喜ばしい達成のひとつは、そこに固有の「文化圏」が形成されてきたことだ。そのような状況がもたらされた大きな原因として、中国や韓国や台湾のめざましい経済的発展があげられるだろう。各国の経済システムがより強く確立されることにより、文化の等価的交換が可能になり、多くの文化的成果(知的財産)が国境を越えて行き来するようになった。共通のルールが定められ、かつてこの地域で猛威をふるった海賊版も徐々に姿を消し(あるいは数を大幅に減じ)、アドバンス(前渡し金)や印税も多くの場合、正当に支払われるようになった。

 僕自身の経験に基づいて言わせていただければ、「ここに来るまでの道のりは長かったなあ」ということになる。以前の状況はそれほど劣悪だった。どれくらいひどかったか、ここでは具体的事実には触れないが(これ以上問題を紛糾させたくないから)、最近では環境は著しく改善され、この「東アジア文化圏」は豊かな、安定したマーケットとして着実に成熟を遂げつつある。まだいくつかの個別の問題は残されているものの、そのマーケット内では今では、音楽や文学や映画やテレビ番組が、基本的には自由に等価に交換され、多くの数の人々の手に取られ、楽しまれている。これはまことに素晴らしい成果というべきだ。

 たとえば韓国のテレビドラマがヒットしたことで、日本人は韓国の文化に対して以前よりずっと親しみを抱くようになったし、韓国語を学習する人の数も急激に増えた。それと交換的にというか、たとえば僕がアメリカの大学にいるときには、多くの韓国人・中国人留学生がオフィスを訪れてくれたものだ。彼らは驚くほど熱心に僕の本を読んでくれて、我々の間には多くの語り合うべきことがあった。

 このような好ましい状況を出現させるために、長い歳月にわたり多くの人々が心血を注いできた。僕も一人の当事者として、微力ではあるがそれなりに努力を続けてきたし、このような安定した交流が持続すれば、我々と東アジア近隣諸国との間に存在するいくつかの懸案も、時間はかかるかもしれないが、徐々に解決に向かって行くに違いないと期待を抱いていた。文化の交換は「我々はたとえ話す言葉が違っても、基本的には感情や感動を共有しあえる人間同士なのだ」という認識をもたらすことをひとつの重要な目的にしている。それはいわば、国境を越えて魂が行き来する道筋なのだ。

 今回の尖閣諸島問題や、あるいは竹島問題が、そのような地道な達成を大きく破壊してしまうことを、一人のアジアの作家として、また一人の日本人として、僕は恐れる。

 国境線というものが存在する以上、残念ながら(というべきだろう)領土問題は避けて通れないイシューである。しかしそれは実務的に解決可能な案件であるはずだし、また実務的に解決可能な案件でなくてはならないと考えている。領土問題が実務課題であることを超えて、「国民感情」の領域に踏み込んでくると、それは往々にして出口のない、危険な状況を出現させることになる。それは安酒の酔いに似ている。安酒はほんの数杯で人を酔っ払わせ、頭に血を上らせる。人々の声は大きくなり、その行動は粗暴になる。論理は単純化され、自己反復的になる。しかし賑(にぎ)やかに騒いだあと、夜が明けてみれば、あとに残るのはいやな頭痛だけだ。

 そのような安酒を気前よく振る舞い、騒ぎを煽(あお)るタイプの政治家や論客に対して、我々は注意深くならなくてはならない。一九三〇年代にアドルフ・ヒトラーが政権の基礎を固めたのも、第一次大戦によって失われた領土の回復を一貫してその政策の根幹に置いたからだった。それがどのような結果をもたらしたか、我々は知っている。今回の尖閣諸島問題においても、状況がこのように深刻な段階まで推し進められた要因は、両方の側で後日冷静に検証されなくてはならないだろう。政治家や論客は威勢のよい言葉を並べて人々を煽るだけですむが、実際に傷つくのは現場に立たされた個々の人間なのだ。

 僕は『ねじまき鳥クロニクル』という小説の中で、一九三九年に満州国とモンゴルとの間で起こった「ノモンハン戦争」を取り上げたことがある。それは国境線の紛争がもたらした、短いけれど熾烈(しれつ)な戦争だった。日本軍とモンゴル=ソビエト軍との間に激しい戦闘が行われ、双方あわせて二万に近い数の兵士が命を失った。僕は小説を書いたあとでその地を訪れ、薬莢(やっきょう)や遺品がいまだに散らばる茫漠(ぼうばく)たる荒野の真ん中に立ち、「どうしてこんな何もない不毛な一片の土地を巡って、人々が意味もなく殺し合わなくてはならなかったのか?」と、激しい無力感に襲われたものだった。

 最初にも述べたように、中国の書店で日本人著者の書物が引き揚げられたことについて、僕は意見を述べる立場にはない。それはあくまで中国国内の問題である。一人の著者としてきわめて残念には思うが、それについてはどうすることもできない。僕に今ここではっきり言えるのは、そのような中国側の行動に対して、どうか報復的行動をとらないでいただきたいということだけだ。もしそんなことをすれば、それは我々の問題となって、我々自身に跳ね返ってくるだろう。逆に「我々は他国の文化に対し、たとえどのような事情があろうとしかるべき敬意を失うことはない」という静かな姿勢を示すことができれば、それは我々にとって大事な達成となるはずだ。それはまさに安酒の酔いの対極に位置するものとなるだろう。

 安酒の酔いはいつか覚める。しかし魂が行き来する道筋を塞いでしまってはならない。その道筋を作るために、多くの人々が長い歳月をかけ、血の滲(にじ)むような努力を重ねてきたのだ。そしてそれはこれからも、何があろうと維持し続けなくてはならない大事な道筋なの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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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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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3.01.26 12:05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글입니다.
    싸구려 술기운...등

    좋은 글 소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2. 안영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3.10.27 04:40

    언제 이렇게 여행 다니시며 글을 올리시는지 궁금합니다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며칠동안 얌전히 싸 놓았던 내 겔럭시노트를 가져 가지 않기에 전화를 걸었더니 택배기사가 바빠서 그러는 것 같으니 혹시 가까운 편의점에 가서 착불로 부쳐줄 수 없겠느냔다.   마냥 기다리다간 여행전에 처분하지 못할 가 조바심도 나서 들고 나섰다. 

 

가까운 편의점에가서 택배를 부칠 수 있느냐니까 자기 점포에서 안 받으니 택배 받는 편의점을 알려 준다.   큰길에 나가 왼편으로 돌아  첫 편의점에 택배기계가 있다고  한다.    그 편의점에 들어가 택배 부치는 기계가 어디에 있느냐 물으니  내 소포를 보더니 우체국 택배상자인지라  나가면 바로 왼쪽 골목에 우체국에 있는데 거기서 부치는게 좋지 않겠냔다.    아마도 노친네가 기계 쓸 줄 모를 것 같아 에둘러 사절하는 것 같다.  한번 써 보고 싶었지만 물건이 값진 것이라 우체국을 찾아 나섰다.

 

원래는 우체국에 갈 생각이었는데 버스카드를 두고 나온 터라  우체국행을 단념하고 편의점을 찾아 다녔는데 걸어 가는 거리에 우체국에 있다니 반가운 소식이었다.  사실 집에 가까운 거리에 우체국이 하나 있었는데 몇년전에 사라져서 아쉬워했었다.   그것이 그 반대편 골목길로 이사를 온 것 같았다.  거의 반대편 같은 거리였다.

 

다음날 받을 거란 이야기를 듣고 내주에나 팔리는 것이 확정되려니 생각했는데 다음날 문자가 왔다.  G마켓 내 통장에 입금되었단다.  찰고가 그대로인 275,000원.     하긴 별로 쓰지 않았고 흠도 없으려니와 상자만 빼면 사용설명서까지 완전히 상자에 꺼냈던 그대로 모든 부속풍을 포함했으니 최상급 중고품이다.   거기에다  32G micro SD 에 extra battery 두개 충전 케이블이 하나 더 넣었으니 갤럭시 노트 빼고도 10만원가까운 가외 부품이 들어 있었다.  마음 바꾸기전에 얼른 입금시켜 거래를 종결 시킨 것 같다.  그래서  갤럭시노트는 깨끗이 끝났다.

 

기관지에 염증이 생기는 감기에 걸렸다.   4-5일전에 잠자는데 기침이 나더니 가래가 넘어 온다.   그것이 점점 심하더니 결국은 기침을 하면 기관지가 아플 만큼 심한 증세로 발전했다.   금요일엔 내가 다니는 내과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받아왔다.  조금 나아지고 있다.   독감예방주사도 맞았고 2주전에는 평생 예방한다는 새로 나온 폐렴예방주사를 10만원 내고 맞았다.  조금은 안심이 된다.   감기야 저절로 낫지만 병발한는 합병증이 겁나는 것.

 

감기를 앓는 동안 대잠금을 다 봐 치웠다.  장장 54회를 1주 남짓 만에 다 본것이다.  물론 20화까지는 역사드라마 채널에서  재방을 보다가 자주 놓지곤 해서 유료사이트 <다시보기>로 보게 된 것이다.  그래도 30 여회분을 일주일 남짓 하는 시간안에 봤으니 하루에 4회 이상 본 셈이다.

 

얼마전에 중동까지 자전거여행을 한 잔차인을 만났는데 대장금이 <이란>,  <시리아>에까지 나가 인기를 누렸다니 알만했다.

 

사람이란 몸이 성치 않으면 센치해진다.    지나간 시절들이 떠 오르고 센치할 때 떠 오르는 회상은 회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난 과연 바르게 살았나?    가까운 주변사람에 아픔을 주지 않았나?    내 Death Bed를 지키는 사람들은 나를 뭐라고 그럴까?      이런 생각은 평상시같으면 부질없는 생각으로 단칼에 무산시키련만 마음이 약해지면 이런 부질없는 상념이 뭉게뭉게 일어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Wind-up Bird Chronicle> 이란 소설을 읽고 있다.   이 책 역시 내 회한을 불러 오는 촉매역할을 했다.    원래 이 책은 <ねじまき鳥クロニクル(네지마끼도리 크로니크르)>의 영역으로 코니가  아마존에서 산 것이다.  그런데 영역본은 무료로 다운 받을 수 있는 책이었다.  아래에 가면 무료 다운 받을 수  있다.

( http://deadpoetpoetan.files.wordpress.com/2009/12/haruki-murakami-the-wind-up-bird-chronicle.pdf )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한글로도 번역본이 나와 있었다.   아직 5분지 1 정도 밖에 읽지 못했지만 내 삶을 회상하게 하는 소설이다.    또 다른 흥미가 일면 끝내지 못할 지도 모른다.  지금 읽다 만 책만해도 여러권이다.  언젠가 이어 읽기를 할 것이라 희망하지만 과연 그 희망이 이루어질런지?

 

 

 

 <ねじまき鳥クロニクル(네지마끼도리 크로니크르)>

 

 

 

 

<태엽감는 새 (연대기)>

 

 

무라카미 하루키,  꾸물꾸물하는 날씨, 감기증세가 멜랑코리한 무드를 생산 것 같다.      그런데 우연히  음악사이트  <벅스>에서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듣게 된 것이다.   눈물이 난다.    왜?     내 사춘기를 회상케 해 주기 때문이 아닐까?   내 사춘기는 참으로 고난의 나날들이었다.   전쟁이란 시대 상황에서 내 장래를 설계해야 하는 때 였다.   개인적으로도 별로 빛이 보이지 않는 암울하가 짝이 없던 때였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자 초딩이었던 난 3년간 헤어졌던 부모와 간신히 재회했다.  그러나 또 다시 아버지를 여위는 불운을 맞았었다.     일본에서 살다 한국에 돌아온 귀환 동포인 우리 가족은 한국에는 전혀 아무 연고가 없었다.    난 실질적 고아 였고 어렵게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625 전쟁이 터졌고 그나마의 가족도 전쟁과 더불어 와해되었다.

 

휴전되던 해에 해군사관학교에 응시해서 입교했다,  고된 훈련과 장래에 대한 고뇌끝에 퇴교를 결심했으나 어리석은 방법으로 인해 결국은  군법회의에 회부되었고  파란만장한  해사생활을 끌내고  퇴교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서울대에 입학하게 되어 그나마 안정된 대학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서울로 출가해서 살고 있는 두째누님댁에 기거하면서 가정교사로 돈을 벌어 학비와 책값을 대었다.     연애한번 못하고 내 사춘기는 먹고살고 공부하느라고 다 보냈다.     ( 2010/06/25 - [일상, 단상] - 전쟁이란 무엇인가 - 625 전쟁의 생존기 )


 

그 시절에 듣고 좋아 했던 노래가 바로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였다.  세레나데는 애인을 위해 부르는 노래다.   그런데 왜 그 노래는 애조를 띄웠는가?      슈베르트의 가곡은 하나같이 슬프다.  

 

그런데 유독 이 노래개 더 슬피 들리는 것은  어쩌면 연애한번 못해보고 떠내 버린 내 청춘이 회한이 되어 그리 들리는지 모른다. 

 

그 때 아내는 내가 살던 혜화동 누님집에서 불과 30~40 미터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이제 52 년째 해로 하고 있는 고딩이었던 그녀를 위해 그 세레나데를 내가 부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망상을 해 본다.

2007/06/27 - [사랑, 운명, 인연] - 운명의 인연

  

난 그녀의 집 창가를 수없이 지나다녔는데 내가 이 노래를 불러 그녀를 불러 낼 수는 없었을까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본다.   ( 2007/07/02 - [사랑, 운명, 인연] - 인연의 나선 궤적을 따라서 )


 

 

 

 


 

 내 사춘기에 좋아했던 이노래를 다시 들으면 눈물이 난다.


http://youtu.be/XTgwWkHBgiY


1,명랑한 저 달빛 아래 들리는 소리
무슨 비밀 여기 있어 소근거리나
만날 언약 맺은 우리 달 밝은 오늘 달 밝은 오늘
우리 서로 잠시라도 잊지 못하여 잊지 못하여
(오라는가 나의 사랑 들리는 곳에 타는 듯한 나의 생각
기다리는 너 잊을 수 없구나 나의 사랑)


2.수풀 싸여 덮힌 곳에 따뜻한 우정
적막한 밤 달빛 아래 꿈을 꾸었네
밤은 깊어 고요한데 들리는 소리 들리는 소리
들려 오는 그의 소리 들려 오지만 분명치 않구나
오라는가 나의 친구 들리는 곳에 타는 듯한 나의 사랑
기다리는 너 잊을 수 없구나 내 사랑아

 

Posted by Satsol 샛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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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동환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3.01.15 20:17

    종종 들러 좋은 말씀 보고 갑니다. 아마도 최초는 GPS에 관한 검색을 통해서 였던걸로 기억합니다.
    저번 글의 사진도 그렇고 선생님의 웃는 모습은 많이 못뵌것 같은데요 건강하시고 즐거운 모습 많이 보여주세요.

  2. 몽촌토성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3.10.07 17:23

    좋은데요. ^^

인연이 다하면 사라진다.

 

존재의 현상은 결합된 것으로서

조건이 바뀌면 다른 것으로 변하여 달라진다.

결합된 모든 것은 다 흩어 지나니 .....

 

 

대품반야경의 첫구절이다.  (코니의 블로그에서)

 

올해 들어 내 두개의 블로그가 사라졌다.

 

내가 처음 블로그를 개설한 것이 2003년 한미르였고 ( 블로그에 대한 단상 ) 그 한미르가 파란(paran) 이란 포탈로 바뀌어 2009년 부터 거기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  다시 찾은 블로그 )  

 

그러다 그 블로그는 중단했다.  그림을 올리기 까다롭게 만들었기 때문었다.      원래 파란 블로그에 글을 올리게 된 이유는 그 블로그는 동시 발행 서비스를 했기 때문이었다.    즉 거기에 올린 글은 연동된 다른 블로그에 자동으로 동시 발행을 해 주었기 때문었다.

 

그런데 그 포털이 금년 폐쇄했고 거기에서 동시 발행한 글들은 text 만 빼고는 사진들은 모두 지워졌다.   거기에서 다운 받아 tistory 에 옮긴 글들에서도 사진은 따라 오지 않았다. 상당히 중요한 정보가 든 사진들도 모두 사라졌다.

 

그런데 올해에 Yahoo Korea 가 폐쇄한다고 기별이 왔다.   Yahoo 도 내가 이메일 계정을 제일 먼저 연 포털이었다.   원래 미국 계정을 yahoo.com 으로 열었는데 Yahoo Korea 가 개설되면서 내 이메일은 yahoo.co.kr 로 절로 이전되었었다.

 

그리고 블로그도 열었다.  Jogl 에 대한 강의만 그곳에 올렸다.   메일 계정은 Yahoo.com 으로 이전할 수 있으나 블로그는 모두 다운 받아 두지 않으면 12월 말이면 사라질 것이란다.    그래서 오늘 다운받아 뒀다.  그래도 사진도 따라 왔다.  paran 보다는 낫다.

 

인연이 다 하면 사라진다더니  가장 먼저 연 블로그도 인연이 다해서 사라졌고  가장 먼저 email 을 개설해서 연 yahoo 도 곧 사라진다.

 

대품반야경의 구절대로다.

 

인연이 다해서 사라질 뿐이다.

 

 

 

 

인연이 다해서 사라진 야후 블로그에 올렸던

Jogl 강의의 그림 몇장.

yahoo 는 paran 보단 낫다.

그림도 되돌려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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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12.03 12:51

    서운하시겠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인연이 선생님께 많이 생기니까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