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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스마트기기 시대에는 한자는 도태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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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기기 시대에는 한자는 도태된다.

샛솔 2015. 8. 27. 14:29

사일 공일 구촌 - 오늘의 글살이

 

난 할아버지를 뵌 적이 없지만 어렸을 때 어른들이 할아버지 함자를 물으면 대답해야 할 때가 있었다.  써 봐라 할 때도 있다.   할아버지 이름을 한자로 제대로 쓸 수 없는 손자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할아버지 이름에 들어가는 목숨 수자를 외어 두지 않으면 안되었다.

 

목숨 수자는 획이 많은 한자인데 낱말에 많이 쓰이지도 않는다.    쉽게 외어지지 않는다.  한 두번 외었다가도 곧 잊게 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한자를 조각을 내어 구구단 외우듯 입으로 외우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사일공일구촌(士 一 工 一 口 寸 )이 나왔다.  그래서 인터넷 시대의 오늘에도 목숨수자 하나는 정자로 정확하게 쓸 수 있다.

 

내가 이 이야기를 글 머리에 꺼낸 것은 한자는 끊임없이 갈고 닦지 않으면 쉽게 잊어 버린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요즘 인터넷 시대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우린 한글만으로 글살이를 잘 하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지만 한자를 많이 쓰는 일본 사람들에게는 큰 골치거리가 된다.    

 

인터넷시대인 오늘날 글자를 종이에 쓰는 경우는 점점 줄어 들고 있다.  오는 생일이면 팔순이 되는 아내도 장 보러 갈 때 살 물건 목록을 종이에 적어가지고 가지 않는다.   대신 아이폰에 녹음을 한다.   양파, 배추, 가쓰오 간장..... 등 불러 댄다.

 

여행을 다닐때에는 시차가 있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아이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아이들도 문자로 답한다.   이처럼 직접 종이에 글자를  적어 넣는 경우가 적어지고 녹음으로 메모를 하거나 굳은모 글쇠판 아니면 화면위의 무른모 글쇠판을 통해서 글자를 입력한다.  (굳은모 글쇠판도 살아질 것이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한자를 섞어쓰기 때문에 굳은모 글쇠판도 어차피 화면위의 무른모를 불러와 한자를 골라 입력시킨다.   핸폰같은 경우에는 글쇠판에 가나를 찍어 넣으면 그 소리에 맞는 한자가 죽 나타난다.  거기서 맞는 한자를 골라 입력한다.  

 

이러다 보니 한자를 직접 써 넣는 능력이 떨어진다.   종이에 펜으로 한자를 적어 넣으려면 한자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요즘 다시 한자를 부활시키자는 사람들이 생긴 것 같다.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를 병기하잔다.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살아 있는 한 한자는 부활할 수 없다. 백번 그런 주장을 하고 운동을 해도 불가능한 이야기다.

 

한글 글살이가 이미 30년 되었는데 누가 아직도 한자를 쓰자고 하는가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 봤다.  역시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이었다.

 

세상은 바뀌고 있는데 아직도 종이책이 주류를 이루던 글살이 시절의 한자를 쓰자고 주장하는 늙은이들이 있는 것이다. 무대에서 내려와야 할 사람들이 터문이 없는 말을 만들어 선동을 하고 있다.

 

컴퓨터와 휴대전화가 많이 퍼지자 일본도 한자를 자꾸 잊어 간다고 고민하는 것 같다.

 

단언컨데 일본도 글살이에서 한자가 도태될 것이다.    아래의 그림표를 보면 그 추세를 잘 알 수 있다.   한자를 써 넣을 수 있는 힘이 해마다 쇄퇴하고 있다고 조사결과가 나와 있다.

 

학교교육을 받는 10대에서 나이가 들면 들 수록 점차 한자를 써 넣을 수 있는 능력은 줄고 있다.

 

단지 50대 60대에서 다소 능력감소가 수그러지는 것은 그들이 글살이에서 스마트 세대 이전 사람들이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아래 그림표같이 장미(薔薇)와 같은 한자는 자주 쓰는 글자도 아니기 때문에 늘 모든 획을 다 외우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나도 장미 장자는 오늘 자주 보고 있지만 돌아 서면 쓰지 못한다.

 

종이에 쓰지 않을 땐 모든 획을 정확히 외우고 있지 않아도 스마트기기에 입력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대강의 모양으로 글자를 인식하기 때문에 그것을 골라 찍으면 되기 때문이다.

 

 

 

 

PC나 휴대전화들 통해서 글살이를 하게 되자 일본 사람들의 한자 적어 넣기 능력이 해가 갈 수록 떨어지고 있다.

바라, 유우쓰, 쥬단, 기린 같은 낱말들을 한자로 적어 넣으려면 생각이 안난단다.

나도 기린과 장미의 미자 그리고 우울의 우자만 적어 넣을 수 있었다.

이렇게 어려운 한자는 반도 외우지 못한다.

 

 

 

획수가 많은(19획) 장미 장자를 이 블로그 문서 편집기에서 제공하는 모든 글자 크기로 입력해 봤다.

36, 24, 18, 14, 12, 11, 10, 9, 8 pt 의 크기들이다.

 

 

이 것을 내 모니터의 확장률 100% 의 표준상태에서 그림으로 갈무리 해 봤다.

 

 

 

이 그림을 다시 400% 늘려서 갈무리 해 봤다.

확대률 4배의 돋보기로 보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

이 그림을 보면 100% 화면에서 작은 글자가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를 확대경으로 검사하는 것과 같다.

 

이 것을 보면 36,24, 18 pt 의 한자까지 장미장자의 모든 획이 구별이 되게 그려지고 14pt 에서는 입구자속에 든 작은 입구자는 두꺼운 一 자로만 보인다.   그 이하의 글자 크기로는 모든 획이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이렇게 글자의 모양이 정자에서 점차 인식 불가능한 모양으로 연속적으로 변할 때에 퍼지이론(Fuzzy theory)을 적용할 수 있다.   퍼지이론에서는 연속적으로 변하는 그 모호성을 측정한다.       36, 24, 18 pt 까지 퍼지측도가 1.0 을 유지하다가 8pt 의 글자 크기엔 거의 0.0 으로 줄어 든다.   위의  그림에서 8 pt 글자는 장미 장자로는 인식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블로그에서 쓰고 있는 9 pt 의 글씨 크기로는 퍼지 측도가 0.4나 0.3 정도 아닐까 추측된다.

 

인터넷을 찾아 보아도 아직 한자 디스플레이에 대한 퍼지이론 적용에 관한 논문은 발견하지 못했다.  

 

아래의 울자도 비슷하다.

 

 

鬱(36) 鬱(18) 鬱(14)

 

 대개 15 획이 넘어서는 복잡한 한자는 보통의 해상도에서 정확한 한자를 보고 있는 경우는 아주 드믈다.   그렇다면 일본 사람들은 한자를 쓰고 읽고 한다해도 퍼지(fuzzy) 한자를 읽고 쓰고 있는 것이다.

 

이 블로그의 표준 글자 크기는 9pt 로 설정해 놓고 있다.  따라서 이 블로그에 한자를 쓴다 하면 10에서 15 획 이상의 복잡한 한자는 퍼지 글자를 쓴다는 이야기가 된다.

 

글머리에 썼던 목숨수자는 어떤가  가 된다.  이 정도면 목숨 수자로 알아 볼 수 있겠지만  이것을 갈무리해서 400 배 늘려서 보면

 

 

 

가 된다.   사일공일구촌(士 一 工 一 口 寸 )과는 거리가 멀다. 

 

당연히 펜으로 정자를 열심히 쓰면서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정자를 쓸 수 있는 능력은 없어진 것이다.   옛날 같으면 할아버지 함자도 외우지 못하는 바보라고 호통을 맞았을 것이다.  

 

일본 사람이  장미를 급히 종이에 쓸 필요가 생겼다면 어떻게 할까?     명확한 획을 기억하지 못하고 fuzzy 글자로만 살았다면 이 한자를 쓸 수가 없다.     자연히 ばら (바라) 라고 쓰게 될 것이다.    

 

장미라는 이름을  종이에 쓰기 위해서 그 복잡한 한자의 획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그 기억을 유지해야 한다면 얼마나 낭비적인 노력인가?     

 

글이란 그 뿌리가 소리말을 적어서 남겨 두기 위해서 생긴 것이다.    그것이 글말 스스로의 생명을 얻어 글말만의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나날의 글살이에서는 그 기능이 대부분 그대로 남아 있다.    소리말로 남길 것을 글로 적어 갈무리하는 쓰임새가 가장 많다. 

 

한 때 글말이 전성기를 누린 시절이 있었다.  인쇄술의 발달로 지식을 전파하는 가장 훌륭한 매체로 책이나 신문 잡지따위가 생기면서다.  단순히 개인적인 교신을 위해서 소리말을 글말로 옮겨 적는 것이 아니라 한 두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을 글말로 갈무리해서 그것을 인쇄술로 복제하여 많은 사람에게 퍼뜨리게 할 수 있게 되어서였다.   

 

그런데 이것도 바뀌고 있는 것이다.   종이신문이나 종이책은 이젠 사양길에 들어섰다.  전에  새로운 형태의 전자책 (   2011/08/22 - [책] - ebook 예찬 - 새로운 형태의 ebook  , 2011/01/14 - [책] - 종이책의 미래 ) 에서 미래의 "책"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를 생각해서 정리 해 보았다.

 

그 글에서 엘고아가 쓴 "Our Choice" 라는 책을 미래책의 한 가능성으로 소개했다. 

 

책은 글자로만 된 것이 아니라, 스마트기기에 달린 GPS와 지도, 소리,  동영상,  에니메이션,  시늉내기(시뮤레이션)이 다 들어 간다.      읽는 것 뿐 아니라 무비로 보고 소리로 듣고 손가락으로 시늉내기를 한다.   심지어 스크린에 바람을 불어 풍차를 돌리기 까지 한다.

 

앞서 글에서 내가 그랬다.   미래의 책은 오늘의 개념으로는 책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뀔 것이라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하나의 매체 즉 이진수의 모음으로 디지타이즈되어 가고 있다.   우린 소리말을 글말로 옮겨 적는 무른모(speech to text) 를 만들어 글말로 바꿔주어 청각장애자에게 봉사하고 있다.  또 한편 글말을 소리내어 읽어 주는 voiceover 라는 무른모를 개발하여  시력장애자나 난독증 환자에게 읽어 주는 봉사를 한다.  (2014/11/26 - [책] - Kindle 책이면 뭐 든지 읽어 준다. - 이건 대박 )

 

아래의 동영상은 내가  2 불 안되는 아이패드 <Speech to Text> 라는 앱을 써서 소리말을 글말로 바꾸고 아이패드의 최신 iOS 에 장착된 VoiceOver 를 작동시켜 읽게 하는 스마트 기기의 최근의 기능을 시연해 만든 것이다.

 

이 것은 최근의 스마트 기기의 글살이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를  아주 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소리말을 필기도구 없이 직접 스마트기기(아이패드)에 대고 말하면 스마트기기는 글말로 바꿔 준다.

 

다시 글말을 iOS 의 VoiceOver 라는 기능을 켜고 손가락을 대면 시력이 약한 사람, 또는 난독증인 사람을 위해서 소리를 내서 읽어 준다.

 

킨들에서 나오는 많은 전자책이 오디오북과 같이 나온다.  이렇게 짝을 지어 나오는 책은 소리책과 글책이 서로 동기화(Synchronize) 되어 흔들리는 버스나 전철에서 이어폰을 통해서 소리말로 읽고(실은 듣고) 그 읽던 부분을 잠자리에서는 머리맡의 거치대에서 글말로 이어 읽기를 할 수도 있다.   소리말과 글말은 이젠 한 곳으로 수렴하고 있다

 

 

 

 

이 동영상은 내가 2불 미만으로 산 Speech to Text 란 앱을 이용해서 일본어 소리말을 글말로 변환시키고

"시리" 를 불러 VoiceOver를 작동시켜 내 글말을 소리말로 변환시켜 본 것이다.

글말로 바뀐 일어는 전자메일이나 카카오 같은 사회관계망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보낼 수도 있다.

녹음파일이건 문자열이건 모두 디지털 즉 2진수의 파일로 바뀌어 메모리칩에 저장된다.

종이도 아니고 녹음테이프도 아니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메모리다.

실리콘으로 만든 반도체다.

이건 또 다른 획기적인 메모리 기술이 나오면 바뀔지 모른다.

세상은 기술과 함께 진화한다.

안타깝게도 일어 VoiceOver (

(2014/11/26 - [책] - Kindle 책이면 뭐 든지 읽어 준다. - 이건 대박 )

는 영어나 우리말 VoiceOver 이 비해 열악하다.

한자를 혼용하는 일어는 VoiceOver 를 가르치는데에도 어려움이 많은 것 같다.

 

 

 

이 동영상에는 한번 짚고 넘어 갈 것이 있다.

 

여기에서 글말로 변환된 장미(薔薇)라는 한자는 그림으로 저장된 것이 아니다.  각 한자에 배당된 코드로 저장된 것이다.      그리고 디스플레이 무른모가 지정한 글자의 글꼴로 글자의 형상을 재현한다.

 

우리는 유한한 해상도의 디스플레이를 쓰기 때문에 글씨의 크기를 비정상적으로 키우지 않는 한 복잡한 한자는 퍼지상태로 읽고 쓰고 한다.   이렇게 되면 결국 그런 한자는 도태되고 말 것이다.  어차피 정자를 모르는 한자를 굳이 디지타이즈해서 쓸 필요가 있겠는가?     펜으로 종이에 ばら 라고 쓰면서 스마트기기에 퍼지 상태의   ばら (薔薇) 를 남겨 둘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획이 많은 한자의 퍼지상태는 종이와 펜 시대에도 있었다. 

 

2013/12/22 - [IT 와 새로운 것들] - 한망필망 (韓網必亡) 이란 글머리에 여담으로 내가 대학시절 수학강의를 한자로 받아 쓰느라고 애를 먹었단 이야기를 했다.     미분가능(differentiable) 이라는 용어가 아주 잘 나오는데 이것을 한자로 쓰면 微分可能이다  획수가 꽤 있는 한자다.   이것을 번번히 정자로 쓰려면 넘 시간이 걸려 이것과 몇개의 자주 나오는 복잡한 수학용어의 한자 초서를 익혀 필기의 효률을 올렸다는 이야기를 썼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미분가능이란 초서는 한자를 쓰자고 주장하는 늙은이도 쓰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초서는 문체에 따라서 많이 달라 지기 때문에 퍼지측도가 정자(1.0)에 비해서 매우 낮을 것이다.   난 초서를 속기의 목적으로 썼지만 초서는 서예로 보는 것이 옳다.

 

그 때 왜 한글로 미분가능이라고 쓰지 않고 한자로 微分可能 이라고 쓰기를 고집했던가?

 

아마 일본 사람들이 한자를 버리지 못하는 논리와 비슷한 논리를 대었을 것이다. 

 

소리말에서는 한자가 없는데 왜 글말에서는 한자를 버리지 못하는가?

 

우리는 이미 버렸게 때문에 일본사람들에게 묻고 있다.

 

일본 사람이 말하는 이유중에 가장 큰 것이 가독성이라고 한다.  

 

이것은 한글  전용으로 간 우리의 경험으로 보아 틀린 말이라고 본다.  가독성이란 일종의 습관이다.  

 

한자를 많이 쓸 때에 한글로 만 쓴 문서를 보면 눈에 확 들어 오는 느낌이 오지 않았다.  그러나 한글만의 문서에 익숙할 때 한자가 섞인 옛 신문을 보면 거부감이 난다.

 

전에 쓴  2013/12/16 - [일상, 단상] - 응답하라 1970 - 내 생애의 전환기 라는 글에  지금부터 45년전 신문 한 조각을 올린 일이 있다.     내 인터뷰 기사였는데 한자도 틀린 것이 있고 읽기도 어렵고 가독성은 커녕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한자를 모르면 한자가 섞인 문서에 거부감을 느낀다. 

 

결론은 가독성이란 습관의 문제이고 띄어쓰기를 도입하고 여러가지 글꼴을 개발하면 얼마던지 친근하고 가독성 높은 문서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한자를 버리면 문화 유산을 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한자는 한글자 한글자에 문화유산이 배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건 정말 웃기는 이야기다.  

 

일본 당용한자는 문화유산을 단절하였다.  

 

내가 전에  한국물리학회의 잡지에서 뿌리잘린 용어 라는 글에서  일본 사람들이 당용한자를 만들면서 과학용어들의 뿌리가 잘려 버렸다는 말을 했다.     函數를 關數로 바꿔 놓고 廻折(diffraction)을 回折로 바꿔 놓아 음독만 같을 뿐 그 뜻은 틀린 엉뚱한 과학용어를 만들었다고 흉 본 일이 있다.

 

옛날 벼슬길에 나서려는 선비들의 글 공부에는 사서 삼경(논어, 맹자, 대학, 시경,...)은 기본이 었다.   이런 책에는 5000 자가 넘는 한자가 나온다고 한다. 한자라고 하나에 한 의미만 담긴 것이 아니다.  여러 글자가 합쳐 새 의미와 개념도 생긴다.     2000 자 안팎의 한자를 배운다고 문화유산이 따라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천진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들이다.

 

거기다 풍류라도 즐기는 선비라면 당시라도 몇 수 읊조려야 시회에 나가 행세깨라도 할 것 아닌가    

 

내가 전에 동서 고금을 통해 이 시보다 난 연애시는 없다고 연애학의 대가 Helen Fisher 가 극찬한 당나라의 시인 원진의 "대돗자리"  시 이야기를 쓴 일이 있다.  (2008/05/30 - [일상, 단상/사랑, 운명, 인연] - 사랑의 가슴앓이 )

 

짧막한 시이지만 2만자의 옥편에도 없는 한자가 나온다.

 

 

 

2천자안팎의 한자를 지킨다고 문화유산이 따라 온다고 착각하는 일본 사람들은 참으로 순진할지로다.

 

우리는 지금 4서 3경을 읽으면서 벼슬 길에 오르던 시대와는 딴 세상에 살고 있다. 

 

옛것은 전문가가 배우고 연구하여 쉽게 풀이해서 우리에게 전해 주면 된다.    나날의 글살이들 하는 우리들은 가장 쉬운 소리글(표음문자)만 익혀서 쓰면 된다.

 

지난 한 세기에 인류가 쌓아 놓은 새 지식은 그 전 수천년 동안 인류가 쌓아 놓은 지식의 양을 능가했고 지금도 지식의 양은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배워야 할 것이 넘 많은 세상이 된 것이다.  이런 때에 소리말을 글말로 옮기는 도구를 위해 그 많은 시간과 기억력을 낭비해야 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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