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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왜 일본은 전범 역사를 반성하지 않나? - 일본 권력구조의 수수께끼를 읽고 본문

왜 일본은 전범 역사를 반성하지 않나? - 일본 권력구조의 수수께끼를 읽고

샛솔 2021. 10. 2. 14:43

왜 일본은 전범 역사를 반성하지 않나? - "일본 권력구조의 수수께끼"(다음부터는 "수수께끼"로 약한다.)를 읽고

 

아래 그림은 영문판 "The enigma of Japnanese Power"의 일본어 역본이다.   이 책은 출간 처음 1주일 팬매 금지되었던 일본어 판이다.      부제로 "수정주의 일본관"이라 붙어 있다. 

 

일본학을 공부한다면 필독서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일본에 대해 잘 못 알고 있었던 것이 많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선 일본을 새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수수께끼가 풀렸다. 

 

Karel Van Wolfren 의 "The enigma of Japanese Power"의 일역본

 

전에 유튜버 "신작가"의 책 "혐한의 나라 일본" 이란 책에서 일본의 TV는 뉴스를 재방한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신창기작가의 책 "혐한의 나라 일본"의 표지

 

그때 나도 일본살이를 할 때 그런 경험을 했다.   비가 오거나 딱히 외출할 일이 없을 때 TV를 틀면 이것저것 방송을 하다가 같은 내용이 돼돌아가는 것을 경험했다.    그 가운데에는 뉴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드라마나 연예 프로그램은 재방을 해도 전에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다시 볼 기회를 주니까 괜찮다.   그러나 뉴스가 하루 종일 바뀌지 않고 재방된다면 그것은 뉴스가 아니다.   

 

작년인가 일본의 재난 지원금을 국민에게 분배하는데 엄청 긴 시간이 걸렸다고 일본의 후진성을 한국 뉴스에서 본 일이 있다.    그 때 일본은 정부가 재난 지원금을 국민에게 직접 지원하지 않고 민간 기업에 위탁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중에 덴츠(電通)라는 회사가 끼어 있었다. 

 

일본 지원금 분배 하청구조

 

또 언젠가 일본이 토쿄올림픽2020을 유치하기 위해 올림픽 위원을 매수하는데 "덴츠"가 관여했다는 뉴스를 본 일이 있다.  덴츠의 계좌에서 아프리카의 한 올림픽위원의 아들에게 몇십만 불을 송금한 기록이 포착되었다던가?

 

이 덴츠가 "수수께끼"에서도 악역으로 등장한다.  

 

"수수께끼"중에서 한 페이지 "숨은 미디아의 보스"

 

숨은 미디어 보스
  Dentsu는 직접적으로 또는 수많은 하청업체를 통해 대중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전 세계 어느 단일 기업보다 어마 무시하게 많은 일을 하고 있다.  또한 박람회 및 교황 방문과 같은 주요 행사를 주관한다. 그 기업은 또한  정치적으로 매우 활동적이다.  이 문제는 앞으로 더 다룰 것이다.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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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idden media boss
 Dentsu does more than any single corporation, anywhere in the world, to mould popular culture, both directly and through hordes of subcontractors. It also orchestrates major events such as expos and visits from the pope. It is highly active politically, about which more in a mo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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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는 NHK를 뺀 나머지 민영 TV는 모두 이 Dentsu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 TV를 보면 국민을 무지로 묶어 두어 권력 상층부 "System"에 순응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NHK도 자기 검열을 통해서 국민에게 알릴 한계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결국 "System"이 미디아를 모두 장악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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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다"라는 정치학
일본 국민이 완전한 시민으로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은 시민에 필요한 지식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관료와 경제기구의 관리들이 일본을 실제로 어떻게 관리하는지는 "따떼마에(겉모습)"라는 그늘에 숨겨져 있기 때문에 잘 모르는 것이다. 일본 시민들의 내일, 그리고 먼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 같은 매우 중요한 것들이 공개적으로 논의되는 일은 없다.

원문

「しかたがない」の政治学
日本国民が完全な市民としてふるまえないのは、市民に必要な知識が与えられていない からだ。官僚や経済機構の役人たちが日本を実際にどのように管理しているかは、たてま えの陰に隠されているのでわからない。日本の市民たちの明日、そして遠い将来に影響を およぼすようなきわめて重要な事柄が、おおやけに議論されることはない。

이 말은 일본 사람들은 진정한 현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 보기로 2011년에 일어났던 후쿠시만 원전 사고 이야기를 한다.

 

최근의 예는 2011 년 삼월의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에 대한 이야기다.   이 사고의 관련자들은 일본의 시민에게 사실의 일부만 또는 완전히 잘못된 사실만 말하려고 했다. 
관료들은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혹은 정확한 내용이 밝혀지면 결코 국민에게 지지받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에게 무의미한 설명을 한다.
게다가 일본 신문의 대부분은 시민 정치, 그리고 궁극적인 현실을 말하는 것을 스스로의 사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시민들을 '순수'하고 정치적으로 무지한 상태로 묶고 두는 것에 협력한다.   미디어는 일본의 생활과 경제, 정치에 대한 실태와는 다른 어디까지나 표면적의 현실 "관리"에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1974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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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같은 저자의 "일본의 거짓 현실"이라는 비교적 최근의 저서에서 일부 베껴 온 것이다. 

 

이처럼 일본은 현실을 거짓되게 꾸며서 국민을 교화하여 바보스럽게 만든다.    그중의 하나가 일본 전범 역사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국이라고 현실을 꾸민다.    그들은 그들이 저질은 전쟁범죄에는 눈을 감고 그들이 받은 피해만을 부각해 피해국이라고 현실을 꾸민다.   

 

패전이라 부르지 않고 종전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이미 현실 부정이다.     Karel Van Wolfren 은 일본말로 "히가이샤 이시키(被害者 意識)라고 썼다.    그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탄 피폭을 가장 큰 전쟁 범죄요 2차 대전의 가장 큰 피해라고 국민들을 세뇌시킨다.   

 

전쟁은 어쩔 수 없었던 마치 자연재해와 같은 것이라고 꾸미고 그들이 그들 나라 밖에서 일으킨 잔인한 전쟁 범죄는 일체 거론하지 않고 자기 나라 국민들이 전쟁에 휩쓸려 전사하고 공습으로 죽고 다치고 재산을 잃은 피해만 부각하고 세뇌한다. 

 

"수수께끼"에는 피해자 의식이라 항목이 나온다.   일어를 영어로 써서 "higaisha isiki"라고 지칭한다. 

 

일본인들은 자기들은 전쟁의 유일한 피해자라는 생각을 갖도록 "System"은 세뇌시켜 왔다.   그리고 기특한 아이디아를 만들어 낸다.  전쟁은 마치 지진이나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라고 국민을 세뇌시킨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그들만이 유일한 피해자라고 믿게 하고 있다.    아래에 그 글의 일부를 구글 번역을 시킨 다음 조금 다듬었다. 

 

피해자일 뿐 아니라 유일한 피해자라는 의식

최초의 진정한 수정주의 전쟁 영화의 등장. 일본 군인은 필리핀과 같은 지역 주민들에게 친절하고 온화하며 선의로 가득 차 있던 반면 미군은 인간의 두개골로 축구를 하는 짐승으로 묘사한다. (Dai Nippon Tekoku – 도조 장군을 영웅으로 만드는 영화). 제국 해군은 일본의 어려운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평화로운 가족들의 구성으로 묘사하고 있다. (Rengo Kantai).

 

일본 판 영화 싱가포르 함락에서 중국인5천 명을 학살한 것은 점령군의 선의를 이해하지 못한 반란군의 폭동을 질서 유지 차원에서 행한 것으로 제시된다. (미나미 주지세이) . 마지막으로 언급된 영화의 끝 부분은 영화의 맥락에는 관계없는 버섯구름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에게 2차 세계 대전의 정말 나쁜 사람들이 누구인지 상기시켜 주기 위한 것이다. 때때로 버섯구름은 기존 일본 스튜디오에서 만든 전쟁 영화에서 거의 필수가 된 것 같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자 폭탄 투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본의 독특함에 대한 믿음은 이러한 사건에서 매우 특별한 지원을 받는다. 국가적 순교라고 까지 말할 수도 있다. 일본에서는 원자폭탄 투하를 전쟁의 최악의 행위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적이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세기의 범죄로 보기도 한다.

나이 든 일본인들은 여전히 ​​이러한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 사실적 관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몇몇 사람들은 히로시마가 폐허가 되기 전에 일본 군부가 15세에서 60세 사이의 2,800만 명의 민간인 민병대를 조직했으며, 이들은 해변에서 죽창만을 사용하여 미국 침략자들을 저지하는 훈련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지식인이나 공인은 원자 폭탄이 수십만 명의 생명을 구했을 것이라고 더 이상 가차 없이 제안할 수가 없다.

 

그리고 8월의 한 주 동안 국가는 미디어에서 생성된 자기 연민의 표현에 탐닉한다. 수많은 외국 반핵 운동가와 평화주의 단체의 순례지인 히로시마의 '평화 공원'과 박물관은 많은 일본 방문객에게 역사가 원폭 이전에 시작되었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고위급이나 유명한 외국인 방문객의 일정에 히로시마 방문을 포함시키려는 캠페인을 벌이는 로비가 있다.

 

그곳에 가면 방문객들은 일본 국민들에게 자신의 유감, 반성, 동정(때로는 '변명')의 표현을 전달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소수의 기자 무리를 발견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러 조직이 수행하는 '평화 연구'는 히로시마의 고통을 주제로 한 어린이 그림, 사진 및 회고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의 항복 결정을 둘러싼 실제 상황과 폭탄에 비해 소련의 만주 침공이 차지하는 상대적인 역할은 일본 지식인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일본 고등학생들은 금세기 전반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는 교사들에게 역사를 배운다.

 

************원문**************

Victimised and alone

appearance of the first genuinely revisionist war films. Japanese soldiers are friendly, gentle, full of goodwill towards the local population in, say, the Philippines, whereas US soldiers are brutes who play football with human skulls (Dai Nippon Teikoku a film that turns General Tojo into a hero). The Imperial Navy consisted of peaceful family men, trying to make the best of a difficult situation for Japan (Rengo Kantai). In the Japanese film version of the fall of Singapore, the murder of five thousand Chinese is presented as motivated by fear of the Chinese guerrillas obstructing Japanese order-keeping among a local population that did not understand the good intentions of the occupiers (Minami Jujisei). The end of the last-mentioned film shows, out of all context, a mushroom cloud – to remind us who were the really bad men in the Second World War. Mushroom clouds, it sometimes seems, have become all but mandatory in the war films made by the established Japanese studios. Here is victimhood in its ultimate guise: the atomic bombing of Hiroshima and Nagasaki. The belief in Japanese uniqueness has received very special support from these events: the Japanese did not just suffer, they suffered uniquely; one might even speak of national martyrdom. It has become common in Japan to consider the dropping of the atom bomb as the worst act of the war. Some even see it as the crime of the century. Older Japanese still have some sense of perspective concerning these events. A few will remember that, before Hiroshima was devastated, the generals had formed a civilian militia of 28 million men and women between fifteen and sixty years of age, who were being trained to stop the US invaders on the beaches using only bamboo spears. But a Japanese intellectual or public figure can no longer suggest with impunity that the bombs probably saved hundreds of thousands of lives. And for a week in August the nation indulges in a media-generated display of self-pity. The ‘peace park’ and museum in Hiroshima – pilgrimage centre for numerous foreign anti-nuclear activists and pacifist groups – do not give the multitude of Japanese visitors any impression that history began before the bomb. There are lobbies campaigning for the inclusion of a visit to Hiroshima in the itineraries of highly placed or famous foreign visitors. Once there, the visitor will find a small army of reporters ready to convey his or her regrets, feelings of remorse and expressions of sympathy (and sometimes ‘excuses’) to the Japanese people. The ‘studies of peace’ that a number of organisations undertake within this context consist of books of children’s drawings, photographs and reminiscences on the theme of Hiroshima’s suffering. The actual circumstances surrounding Japan’s decision to surrender, and relative part played in it by Soviet invasion of Manchuria compared to the bomb, receive hardly any attention from Japanese intellectuals.  The majority of Japanese high-school students are taught history by teachers who themselves have hardly any idea of what transpired in the first half of this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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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출판된 해가 1990년이니 일본의 버블 경제가 붕괴되기 직전에 쓰였고 그 내용도 일본의 전성기로 세계와 무역마찰이 가장 심할 때였다.     그리고 다루고 있는 내용도 1970년, 80년이니 한국에서는 까마득히 앞 선 나라였을 때였다.  

 

그러니까 우리 한국이 위안부라든가, 강제징용,  일제강점기의 가혹행위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해도 모기소리 정도밖에 낼 수 없었고 일본도 아예 무시하기 일수였다.   

 

그러나  그때 이미 전범국이란 죄의식은 거의 사라진 다음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혐한이 최근의 일이 아닌 것이다.     

 

그들은 이미 수정주의 역사관을 만들어 놓고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고등학생이었다면 지금은 나이가 50은 넘었다.   일본의 전범 역사를 알 턱이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선생에게서 역사를 배웠으니 일본의 전쟁 범죄에 알 길이 없을 것이다.

 

한 창 잘 나가는 일본 회사 국가에서 돈 잘 벌어 오는 부모 밑에서 일본 "스고이"에 물들어 자기들이 최고라고 믿는 세대들이니 극우의 세대로 혐한을 주도하고 있다고 보인다. 

 

잘려 나간 피라미드와 같이 국가권력의 상층부가 없으니 전쟁을 일으킨 주범도 알 수 없고 따라서 전쟁은 태풍이나 지진과 같이 어쩌다 일어 났고 일본은 어쩌다 제2차 세계대전에 휩쓸렸다는 편리한 거짓 현실을 조작하여 국민을 호도한다.  

 

그들이 제2차 세계대전의 유일한 피해자라고 믿고 있는 한 일본인은 자기들이 저질은 전쟁 범죄에 대해서 사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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