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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도동서원에서 합천창녕보까지 - 세월호참사 소식을 듣던 날 4 월 16일 대구를 떠나는 날이다. 우리 계획은 이날 예약해 둔 부곡의 그린비치 호텔로 이동하는 것이다. 전날 이방의 택시를 알아 보고 합천창녕보에 와 줄 수 있는가를 문의했다. 10시에서 11시이에 와 달라는 부탁을 했다. 대구의 엘디스 리젠트 호텔을 퇴실하고 짐을 싣고 합천창녕보로 향했다. 네비가 가르쳐 준 도로(군도)의 일부는 도로를 폐쇄하여 국가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있었다. 폐쇄한 도로를 사용하던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다. 우회도로의 안내도 없고 설명도 없이 막아 놨다. 주민들의 군도 폐쇄 결사반대의 현수막만 휘날리고 있었다. 정부나 사업자나 주민의 양해도 없이 제 멋대로 도로를 폐쇄한다. 선진국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세월호참..
강정고령보에서 도동서원까지 - 낙동강 종주 2014 대구에 머믄 두번째 날은 강정고령보에서 남쪽으로 내려 가는 여정이다. 호텔 카운터에 부탁해서 택시를 불렀다. 강정고령보는 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보다. 다음은 달성보인데 일단 달성보를 목표로 잔타를 했다. 날이 청명했고 역시 길은 텅텅 비었다. 평지에선 노래를 불렀다. 아래 지도에서 보듯 이 구간은 강을 어러번 건너 다닌다. 달성보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었다. 어디에서 점심을 먹게 될지 알 수 없어 전날 현대백화점 지하 식품부에서 맛 있는 빵을 점심거리로 사가지고 왔다. 달성보엔 편의점이 있어 테이블에 앉아 먹으려고 테이블을 차지하고 보니 편의점에 미안한 생각이 들어 마실 것이라도 사려고 편의점에 들어 갔다. 그러고 보니 빵 보다는 컵우동이 먹고 싶어 그걸..
대구 근대로의 여행 대구엔 몇년전에 경북대 명예교수인 코니의 외사촌 유화백집을 방문하기 위해서 온 일이 있다. ( 2007/11/24 - [국내여행기/대구 경주] - 유화백집 ) 나보단 두세살 아래인 유화백은 그 때 그 집을 처분하고 창원에 내려갔단 이야기를 들었다. 자전거를 탄다고 왔었지만 자전거는 타지 못했고 대신 영덕 게를 먹으로 간다고 해안가를 자동차로 드라이브 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묵은 호텔은 계산 오거리에 있는 엘디스-리젠트호텔인데 망해가는 호텔인 듯 싶다. 옆에 커다란 메디컬 센터를 짓고 외국의 환자를 유치해 호텔로 쓸 계획인 듯 싶다. 우리가 도착했을 땐 손님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떠나던 수요일엔 갑자가 손님이 많아져 주차장을 삼중(triple)으로 ..
칠곡보에서 강정고령보까지 - 낙동강종주 2014 대구 체재 이튿날은 호텔 카운터에 부탁해 택시를 불러 칠곡보까지 갔다. 거기에서 강정 고령보까지 라이딩을 하고 택시를 불러 타고 호텔에 돌아왔다. 대구 근방이 되어서인지 낙동강 자전거길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월요일이라 자전거길도 텅텅 비었고 위협적인 떼 라이더도 없는 것이 좋았다. 우리의 패이스대로 느긋하게 잔타를 했다. 전날 오후부터 날씨가 청명해서 기분이 좋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는 난 노래를 불렀다. Di Provenza il mar, il suol - chi dal cor ti cancello? Al natio fulgente sol - qual destino ti furò? ..... Verdi 의..
시치리가하마의 애가 고 2 의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은 똑 같을 겁니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이 그들의 자식도 될 수 있습니다. 저희 큰손녀딸도 고 2 입니다. ( 2010/05/02 - [일상, 단상] - 가히리 - 조손동락(祖孫同樂) ) 저희 손녀딸이 그 희생자 중의 하나였다면 어떤 심정일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납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꿈도 펴 보지 못한 어린 영혼을 떠나 보내야 한다면 그 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이 있겠습니까? 미어질 것 같습니다. 옛 노래가 생각이 났습니다. 전에 포스팅했던 "마시로끼 후지노네"란 노랩니다. 2010/02/21 - [일상, 단상] - 마시로끼 후지노네
우리 모두의 공업(共業) - 안전문화 불교에서는 업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인과응보를 믿는 불교에서는 오늘의 일이 바로 전에(전생을포함) 행한 업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죄업(罪業)으로 나타난 것을 함께 지은 죄업의 결과라는 뜻으로 공업이란 말을 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모두의 공업이다. 물론 크게 잘못한 사람 몇을 지목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이 사회는 거미줄 같이 엉켜있는 world of web(거미줄의 사회)이다. 그 몇사람도 결국 우리가 만들어 낸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참사는 우리 모두의 공업이 된다. 오늘 날 이 사회는 국가라는 시스템속에서 움직인다. 그리고 우리나라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이 자유선거에 의해서 그 국가 수반을 뽑는다...
부끄럽구나 어린 영혼 들이여 부끄럽구나 어린 영혼들이여 얼마나 춥고 무서웠겠니 말 잘 듣고 착하게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면 구조해 줄 줄 알고 물이 차오르도록 기다렸던 너희들 얼마나 춥고 무서웠겠니 부끄럽구나 어린 영혼들이여 남의 나라에서 버린 헌 배 사다가 돈 좀 더 벌겠다고 객실 늘리고 짐칸 늘리고 기웃둥 하는 배를 만들었으니 부끄럽구나 어린 영혼들이여 얼마나 춥고 무서웠겠니 수학여행을 간다고 들떠 집을 나온지 하루도 못되 추운 바닷물에 잠기게 했으니 부끄럽구나 어린 영혼들이여 얼마나 춥고 무서웠겠니 그것도 배라고 바다에 띄워도 좋다고 허가해 주었으니 부끄럽구나 어린 영혼들이여 얼마나 춥구 무서웠겠니 물은 차 오르고 점점 어두워지고 구조해 준다던 사람들 모두 달아나 버렸으니 부끄럽구나 어린 영혼들이여 ..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생각나는 Y 군의 이야기 내 물리학과 동기에 Y 군이 있었다. 괴팍하고 고지식한 친구였다. 대학을 졸업후 원자력 연구소에 들어갔다. 핵공학과 라는 학과가 공대에 생기기전이라 물리나 화학과 졸업생이 원자력 연구소에 많이 들어 갔다. 그를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본 것은 80년쯤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은퇴한 다음인가 2000년초에 LA에서 그를 만났다. 그 사이에 미국으로 이민을 와 버린 것이다. 저녁을 먹으면서 오랜 시간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했는데 그가 이민을 온 이유중의 하나는 한국의 부조리와 비리에 염증이 나서 였다고 했다. 원자력 연구소에 다닐 때 한 번은 조선소에 파견 근무를 나갔다고 한다. 배를 만들려면 용접을 많이 해야 하는데 용접이 제대로 되었는지를 검사를 해야 한다고 ..
구미시에서 칠곡보까지 - 낙동강 종주 2014 구미 센추리 호텔에서 2박하고 떠나는 날이다. 대구의 Eldis Regent 호텔에 체킨해야 하기 때문에 이날 라이딩은 멀리 하지 않기로 했다. 칠곡보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택시를 불러 전날 끝냈던 구미시의 구미대교 우안까지 갔다. 칠곡군에서 구미시까지 가는 구역을 넘나 드는 거리라 택시는 미터요금 보다 많은 3만원을 요구한다. 고속도로 통행료까지 3만 2천원을 줬다. 2천원은 팁으로 쳤다. 이날은 코니가 자빠링을 해서 엉덩이 부분 크게 찰과상을 입었다. 이번 자빠링은 접촉은 아니니 남을 탓 할 순 없지만 일요일이라 구미나 대구에서 나온 MTB 무리들의 위협적이고 무모한 라이딩이 간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30대 안팍의 부부인지 애인끼리인지 비슷한 MTB ..
도개면에서 구미시까지 - 낙동강 종주 2014 구미 센추리호텔에서 잘 자고 이튿날은 전날 이마트에서 사온 간단한 아침식사거리로 아침을 먹었다. 호텔 카운터에서 택시를 불러달라고 해서 전날 종주를 마친 도개면까지 자전거를 싣고 갔다. 택시기사는 미터대로 요금을 받았지만 얼마간을 팁으로 얹어 주었다. 대구출신인데 한 때 방직회사에도 다녔지만 회사가 부도가 나서 해직되어 택시를 시작했다고 했다. 전자회사에로 이직도 생각했지만 6년 남짓의 경력도 인정 받지 못하고 다시 바닥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택시기사로 직업전환을 했다고 한다. 후회는 없다고 한다. 구미 대구 변방에는 공업단지 조성으로 여기 저기가 공사중이었다. 과연 그렇게 큰 단지를 만들어 공장들을 유치할 수 있겠냐고 걱정을 했더니 어느 단지 하나 망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