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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 왜 이렇게 매몰되나? 본문

일상, 단상/노년, 건강

코로나19 - 왜 이렇게 매몰되나?

샛솔 2020. 2. 27. 17:11

코로나19 - 왜 이렇게 매몰되나?

 

21세기에 "신천지"와 같은 집단이 있고 그런 집단에 감염되는 사람이 20만이 넘게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31번째 확진자가 나올 때까지 그런 음지에서 코로나19가 마구 창궐하고 있다고는 생각도 못했고 그 집단이 발원지가 되어 오늘 우리나라를 이렇게 발칵 뒤집어 놓을 줄은 몰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30 명 안팎으로 한국의 코로나19 사태는 가라앉고 종식되리라 예상했다.   

 

그래서 그때까지 만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바깥 늘림(extraploration)을 해서 2월 중하순에 정점을 찍고 2월 말 3월 초면 거의 모두 치유되고 아주 운이 나쁘면 사망자 한 사람 정도 발생하고 종식할 것이란 예측을 했던 것이다.  

 

그런 예측과는 완전히 빗나간 오늘의 사태를 맞았다. 

 

우리나라로나 우리 국민으로는 매우 불행한 결과다.  반길 일이 아닌 것이다.    낙관적 전망이 빗나가면 그런 전망을 원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신이 나서 내 예측이 빗나간 것을 야유한다.

 

내가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은 "지나친 걱정은 그것이 걱정"이라는 hypercondria 신드롬을 경계하는 글을 쓴 것이다.   난 단순한 블로거로서 글을 쓴 것이지 내가 방역당국의 일원으로 낙관론을 피력한 것이 아니다. 

 

어떤 방문자는 내가 틀렸으니 글을 내리라는 빈정대는 말을 남겼다.   

 

 그 시점에서 쓴 글이란 "시간"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아직도 유의미하다고 생각하고 남겨 두고 있다.  

 

뉴턴 역학이 양자역학과 상대론에 의해서 깨어졌다고 해도 거시 세계에서 또 광속도보다 엄청 느리게 움직임의 세계에서는 아직도 유효하다. 

 

신천지와 같이 비밀스럽고 고의적으로 방역망을 피하는 집단이란 아주 아주 희귀한 비정상적 집단이다.   정상적인 종교집단이었다면 이렇게 감추고 숨고 피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행히도 이 집단이 코로나19의 진원지가 된 것은 아마도 한국 유행병 역사의 "특이사"로 기록될 것이다.

 

내가 오래 살다 보니 전염병 유행도 많이 겪었다.   내가 아직도 기억하는 어마어마한 전염병은 1946년에 창궐했던 콜레라였다. 

 

너무 대단했던 유행병이라 기록을 찾아보니   1910에서 2016까지의 콜레라 전염병 유행 통계가 있었다. 

 

 

 

 

한국 콜레라 통계

 

일제 강점기                                      1946 - 1980                                   1981  -   2016

발병 연도   발병자    사망자   발병률(1만 명당 발병자 수)

1910 486 382 3.7 1946 15,644 10,181 82.6 1981 0 0 0.0
1911 4 2 0.0 1947 0 0 0.0 1982 0 0 0.0
1912 122 78 0.8 1948 0 0 0.0 1983 0 0 0.0
1913 1 1 0.0 1949 0 0 0.0 1984 0 0 0.0
1914 0 0 0.0 1950 0 0 0.0 1985 0 0 0.0
1915 1 1 0.0 1951 0 0 0.0 1986 0 0 0.0
1916 2,066 1,253 12.4 1952 0 0 0.0 1987 0 0 0.0
1917 0 1 0.0 1953 0 0 0.0 1988 0 0 0.0
1918 0 0 0.0 1954 0 0 0.0 1989 0 0 0.0
1919 16,915 11,533 98.6 1955 0 0 0.0 1990 0 0 0.0
1920 24,229 13,568 140.1 1956 0 0 0.0 1991 113 4 0.3
1921 1 1 0.0 1957 0 0 0.0 1992 0 0 0.0
1922 40 23 0.2 1958 0 0 0.0 1993 0 0 0.0
1923 0 0 0.0 1959 0 0 0.0 1994 0 0 0.0
1924 0 0 0.0 1960 0 0 0.0 1995 68 0 0.1
1925 6 5 0.0 1961 0 0 0.0 1996 2 0 0.0
1926 252 159 1.3 1962 0 0 0.0 1997 10 0 0.0
1927 0 0 0.0 1963 414 36 1.5 1998 0 0 0.0
1928 0 0 0.0 1964 20 2 0.1 1999 3 0 0.0
1929 18 15 0.0 1965 0 0 0.0 2000 0 0 0.0
1930 0 0 0.0 1966 0 0 0.0 2001 162 0 0.3
1931 0 0 0.0 1967 0 0 0.0 2002 4 0 0.0
1932 70 38 0.3 1968 0 0 0.0 2003 1 0 0.0
1933 0 0 0.0 1969 1,538 137 4.9 2004 10 0 0.0
1934 0 0 0.0 1970 206 12 0.6 2005 16 0 0.0
1935 0 0 0.0 1971 0 0 0.0 2006 5 0 0.0
1936 0 0 0.0 1972 0 0 0.0 2007 7 0 0.0
1937 1 1 0.0 1973 0 0 0.0 2008 5 0 0.0
1938 50 32 0.2 1974 0 0 0.0 2009 0 0 0.0
1939 0 0 0.0 1975 0 0 0.0 2010 8 0 0.0
1940 0 0 0.0 1976 0 0 0.0 2011 3 0 0.0
1941 0 0 0.0 1977 0 0 0.0 2012 0 0 0.0
1942 0 0 0.0 1978 0 0 0.0 2013 3 0 0.0
1943 0 0 0.0 1979 0 0 0.0 2014 0 0 0.0
1944 0 0 0.0 1980 145 4 0.4 2015 0 0 0.0
1945 - - - 2016 4 0 0.0

 

 Source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6940371/

 

 

내가 겪었던 1946년 콜레라는 15644 명이 발병했고  10181명이 죽었다.   발병률은 1만 명당 82.6으로 나왔다.   그때 기억을  전에 포스팅에 기록한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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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봄 해방된 지 1년도 못되던 내가 초딩 5학년 때였다.    콜레라(Cholera)가 창궐했다.  충남 보령에서 시작한 이 전염병은 무서운 속도로 퍼져 그 해 9월 까지 1만 6천 명이 감염되고 약 1만 명이 죽었다.

 

학교는 휴교,  교통도 많이 통제되었다.    사실 이 전염병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고 그 예방법이나 치료법도 잘 알려졌다.    감염되면 심한 설사로 탈수증을 유발하여 치료하지 않으면 곧 죽게 된다.  

'

탈수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적당량의 수액을 정맥에 공급해 줘야 하는데 그런 정맥주사도 모자랐고(거의 없었으니) 걸리면 거의 100% 사망에 이르렀다.  

 

내가 대전 목동에 살 때였다.   난 셋째 매형의 동생인 사돈 지간의 20대 청년과 함께 살았다.  형이 결혼 전이었는지 같이 산 것 같지 않고  어머니는 서울 둘째 누님 댁에 가셨는지 집에는 없었던 것 같다.      그 사돈총각이 날 보살펴 준 것 같다.

 

콜리라는 쉽게 예방할 수 있는 전염병이다.   콜레라균은 입으로만 전염되고 열에 약하기 때문에 모든 음식물은 끓여 먹기만 하면 예방이 된다.  

 

그러나 당시 물을 끓여 먹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가스나 전기나 심지어 연탄불이라도 있었다면 쉬었을 것이다.   재래식 아궁이로 취사를 할 때라 물을 따로 끓여 먹는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과 같은 정보의 전달이 쉬울 때도 아니고 공중위생이 철저한 때도 아니었다.   쉽게 걸리고 쉽게 죽었다.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1332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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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해도 내가 콜레라에 걸릴까 걱정했거나 또 어른들이 걱정하거나 한 것에 대한 기억이 없다.     교통이 통제되고 학교가 휴교가 돼고 하니까 갑갑하고 불편했던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2009년 신종 플루 때는 나는 이 전염병이 창궐한 것도 몰랐다.   전혀 기억이 없기에 옛 기록을 검색해 봤다. 

 

며칠 전 코로나19의  공중보건위기단계를 "심각"수준으로 올리면서 2009년 신종플루 때 선포하고 두 번째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과 같은 난리법석을 떨었다면 "왜 나는 이때 전염병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지?"

 

기록을 검색해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2009년 5월 2일 첫 확진자가 발생한 후 꾸준히 환자가 증가하여 7월 21일 공중보건위기단계를 경계단계로 격상시켰다. 

 

라 나오고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유행 당시 우리나라는 '심각' 단계를 11월 3일부터 12월 10일까지 약 한 달간 발령한 바 있다. 

 

한국에서는 2009년 1년 동안 75만 명이 감염돼 263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2009년 75만이 감염되고 263명이 사망했고 유행의 경보를 "심각" 단계까지 올랐었는데 난 무엇을 했나?

 

심각 단계로 올렸던 11월 3일경 난 어디에서 무엇을 했나?

 

그 지음 내가 올린 블로그를 검색해 봤다. 

 



한강 북안 구리시 가는 길이 뚤렸다고 해서 갔던 생각이 난다.  신종플루 유행단계가 "심각"수준 격상 직전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여름이나 가을에 해외여행을 못 가게 된 원인을 블로그에 쓴 포스팅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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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롬톤이 열어 주는 새로운 세상

요지음 브롬톤에 푹 빠져 있다.   브롬톤으로 여행을 해 볼까 구입했는데 신종 인플루엔자가 터지는 바람에 여행은 연기했다.   그 대신   서울에서 연습이나 하자고 타고 나다니다 보니 3륜으로는 꿈꿀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것이다. 

전에 3륜 예찬론을 썼을 때 자전거 진화의 최종 종착역은 3륜이라고 했다.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482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작년 6월 신종플루가 6단계 경고로 상향 조정되었을 때 해외여행의 계획은 취소하고 꿈이나 꾸자고 상상여행을 했었다.

 

그런데 내년에는 그 꿈이 현실이 될 것 같다.



출처: https://boris-satsol.tistory.com/624 [지구별에서 - Things Old and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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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신종플루가 우리 삶에 영향을 준 것은 준 것이다.   왜 여행을 못 갔는지는 그 당시의 기억이 이 블로그 포스팅 외에는 없으니까 환기할 수는 없지만 뭔가 여행을 떠날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은 확실하다.   세계적으로 유행했다니까 외국에서 걸리면 곤란할 것 같아서 떠나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전거를 타고 놀고 다녔다.   아무 걱정 없이 밖으로 나 다녔던 셈이다.

 

그 지음 브롬톤으로 전철 점프(링코)하는 것 시도하고 놀았고 12월 달에는 옴니아를 사서 놀다가 환불하고 곧이어 출시한 아이폰(처음 출시한 3G 모델)을 사서 놀았고  그리고는 전립선 암을 적출하는 수술을 받았던 것 같다.

 

암에 걸린다는 것은 우울한 일이다.    전립선을 제거하고 회복실에서 자전거를 다시 탈 수 있으려나 걱정도 하면서 지난 날의 아련한 추억과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상상을 하면서 121동 병실 복도를 걷던 일이 생각난다.

 

 

 

 

121병동에서 내려다 본 탄천 자전거길  우울하던 회복기에 "아 다시 저 자전거길을 달리고 싶다."라고 썼다.



121병동 복도 서쪽 끝 창밖으로 보이는 탄천 자전거길

 

그리고  마침내 다시 자전거를 탔다.

 

지난해 마지막으로 탄 자전거가 동짓날 라이딩이었다.

 

그리고는 곧 병원 검사,  입원, 수술, 이어지는 회복기간 내내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  

 

분당 서울대 병원 121 병동 서북쪽 창에서 덜 녹은 눈이 여기 저기 남아 있는 탄천 자전거도로 사진 몇장을 찍었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다시 회복되어 자전거 탈 수 있을까 우울했던 병동 생활을 아이폰으로 찍어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었다.  거의 반년이 지났다.



그러니까 신종플루가 심각단계까지 왔어도 단지 외국에서 이 병에 걸릴까 해외 여행을 못했을 뿐 거의 보통때나 다름없이 나 다니면서 놀았고 전립선 암 제거 수술도 받았고 근 7개월 만에 자전거를 다시 탔던 것이다. 

근 7개월만에 타 보는 자전거

 

그리고 그 해(2010) 9월 7일 샌프란시스코로 첫 Brompton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마침내 재작년 이맘때 여행을 다녀 오고 2년만에 비행기 여행을 떠난다.   2년전 여행은 오레곤주의 Crater Lake 의 Rim Ride 가 주 목표였다면 올 여행은 시애틀에서 사내 자전거 타기가 주 목표다.

  

 

그리고 2016년 메르스가 왔다.  

 

MERS 때문에 집에 박혀 있다.

 

돌아 다니다 MERS 에 감염될 확률보다는 개념 없는 감염자가 대중 교통을 타고 돌아 다니다가 확진판정을 받고 뒤늦게 그 동선상에 내가 놓여 격리 대상이 될 확률이 더 크다. 

 

어떻던 6월 말까지는 얌전히 집에 있어야지 7월 8일 출국하는 암스테르담 여행길에 무사히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심심한 터라 추억의 드라마를 검색해서 옛 드라마를 찾아서 보고 있다.    거기에 걸린 것이 1996-1997 기간에 방영된 "첫사랑" 이란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한 때 65.8% 란 아직까지 깨어지지 않은 시청률 최고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 정도라면 다시보기를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드라마 "첫사랑" 에서....

 

한 시간 짜리 60여 회 분을 봤는데 여름 여행까지 다 보지 못하고 돌아와서 끝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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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첫사랑"을 끝내다.

 

메르스 때문에 보기 시작했던 추억의 명드라마 "첫사랑"을 여행 떠나기 전에 다 보지 못하고 귀국해서야 마저 보았다.



메르스 때에도 메르스에 관하여 몇 개의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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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pocondria는 질병에 대한 지나친 공포감을 갖는 일종의 정신적 장애다.    이번 <메르스 대치동 현상>은 일종의 사회적 또는 집단적 질병 공포 장애다. 

Mers - 지나친 걱정 그것이 더 걱정이다.

 

보건 당국이 말하는 대로 더 이상 슈퍼 전파자가 나오지 않는 한 메르스는 잡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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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글도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것들이다. 

 

 

그리고 

 

 

12월 24일, 보건복지부는 세계 보건기구(WHO) 기준[1]에 따라 0시(KST 기준)를 기해 메르스 상황 종료선언했다. 이로써 지난 5월 20일 첫 환자가 발생한 이후 186명이 메르스에 감염돼 그중 38명이 숨진 메르스 사태는 218일 만에 공식 종료됐다.

 

그때에도 지나친 언론의 보도와 시민들의 공포감은 사태에 비하여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다.

 

여기까지가 내 전염병의 경험이다. 

 

 

그런데 이 번 코로나19의 경우도 메르스의 경우와 비교 하면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다.  물론 10여 명의 사망자가 났으니 무서워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건강한 50세 미만인 사람에겐는 완치된 한 감염자의 인터뷰 말처럼 "조금 독한 독감" 정도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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